[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정부가 지난달 27일 고강도 대출규제 정책을 발표한 이후 과열 양상을 보이던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은 가운데, 민간 분양 시장도 단기적으로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대출 규제로 인해 중도금이나 잔금 대출이 어려워질 수 있어 분양 열기를 누그러뜨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럴 경우 가뜩이나 심각한 지방 미분양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대출 규제 정책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주택 공급 확대책이 뒷받침 돼야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아울러 지방 미분양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세제 완화 정책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서울 국평 분양 받을 경우 9.8억 자력 조달해야
2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5월 서울 민간아파트 평균 분양가격은 3.3㎡당(공급면적 기준) 4568만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를 국민평형인 84㎡ 분양가로 환산하면 15억7000만원에 이릅니다. 주택담보대출이 6억원으로 묶였기에 나머지 9억8000여만원은 자력 조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전용 59㎡로 환산해도 5억7660만원 가량이 필요합니다.
이번 대출규제 시행일인 6월 28일 이전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낸 분양단지는 중도금과 이주비, 잔금 대출 등에 대해 종전 대출 규정이 적용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후 시행되는 단지입니다. 충분한 현금동원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자금계획을 다시 세우거나 아예 분양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수도권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사진=뉴스토마토)
부동산R114에 따르면 이번 대출 규제의 영향을 받는 하반기 분양 단지는 △잠실 르엘(서울 송파) △힐스테이트이수역센트럴(서울 동작) △더샵신풍역·더샵르프리베(서울 영등포) △오티에르 반포(서울 서초) 등입니다. 한편 오티에르 포레(서울 성동)과 리버센트 푸르지오(서울 영등포) 단지는 각각 6월 26일과 27일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내면서 이번 규제를 벗어났습니다. 이들을 포함한 하반기 분양 단지는 총 2만800가구가 넘습니다.
이에 서울의 청약 시장이 얼어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특히 전세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려던 분양 계약자들에게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전세보증금을 받아 소유권 이전을 하는 경우 세입자의 전세대출이 원천 차단됐기 때문입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이번 대출 규제책으로 투기 수요는 물론 전반적인 분양 시장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특히 중도금이나 잔금대출이 어려워지면 분양 열기도 가라앉고 분양성도 낮아지면서 분양시장의 소강상태가 길어지거나 관망세가 짙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2년 만 최대”…지방 악성 미분양 해소도 요원
대출규제로 차게 식은 분양시장 여파는 지방 미분양 해소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지방 아파트의 경우 전체 미분양 건수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이른바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12년 사이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의 5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7013가구로 집계됐습니다. 지난 4월(2만6422가구) 대비 591가구(2.2%) 증가한 수치입니다. 준공 후 미분양이 2만7000가구를 넘긴 것은 2013년 6월에 기록한 2만7194가구 이후 11년 11개월 만입니다.
대구 수성구의 한 미분양 단지에 ‘할인분양’ 현수막이 붙은 모습.(사진=뉴시스)
준공 후 미분양은 지방에만 한정되지 않는 추세입니다. 수도권 내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지난달 4616가구로 지난 4월 대비 2.0% 증가했습니다. 서울에서도 692가구로 한 달 새 7.1%가 늘었습니다.
정부는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기 위해 분양가의 50% 가격에 환매조건부로 매입하는 1만가구 규모의 ‘미분양 안심 환매’ 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매입단가가 너무 낮고 준공 후 1년 내 환매해야하는 조건 때문에 지방 건설사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고강도 대출규제와 함께 서울과 수도권을 대상으로는 속히 공급확대책을 함께 적용해야한다고 조언합니다. 아울러 지방의 경우 미분양 해소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세제 혜택을 도입하는 등 세밀한 이원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대출 규제 강화로 인해 분양업계에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하반기 분양계획에도 다소 차질이 있을 것”이라며 “대출 규제만큼 주택공급을 늘리는 대책이 함께 수반될 필요가 있다. 수도권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는 3기 신도시 사업도 지연되고 있는데 세제혜택 등을 통해 활성화 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종완 원장은 “지방 미분양 증가는 공급과잉과 경기침체, 공사비 급등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출규제 강화로 분양시장 열기가 식으면 지방 미분양 물량은 더 늘어날 수 있다”며 “지난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나왔던 주택임대사업자 제도 활성화, 취득세 50% 일시적 완화, 5년 이내 지방 주택 매도 시 양도소득세 감면과 같은 획기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지방 악성 미분양 해소는 요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