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태은 기자] 당정이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이재명정부의 친노동 기조를 가늠할 첫 시험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설명한 정부안이 기존안보다 후퇴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노동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는데요. 민주노총 출신 장관 임명에도 노·정 갈등이 현실화할 경우, 과거 진보정권의 사례에서처럼 국정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번 정부안의 향방이 새 정부 노동정책의 방향성과 정치적 기반에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노란봉투법 정부안…"1년 유예·사용자 범위 확대"
27일 국회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고용부는 최근 노란봉투법의 정부안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에게 설명했습니다. 당정은 늦어도 9월 정기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을 처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노란봉투법은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와 관련한 손해배상 청구 판결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법원이 노동조합에 47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가압류를 결정하자 시민들이 노란봉투에 성금을 모아 전달한 데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21·22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정부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최종 부결됐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노란봉투법' 재추진을 주요 노동 공약으로 내세웠는데요. 그러나 최근 고용부가 국회에 설명한 '정부안'에는 노동계 핵심 요구 사항의 상당 부분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안은 22대 법안을 토대로 노조원 책임을 개별로 따져야 한다는 2023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손해배상 소송 대법원 판례를 반영하는 방식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핵심 쟁점은 노조법 제2조 2호의 '사용자 범위 확대'입니다. 현행 노조법 제2조는 사용자를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난 22대 국회 개정안에서는 이를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변경했습니다. 하청업체 노조가 원청 사용자를 상대와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사용자의 개념을 확장하는 겁니다. 다만 이번 정부안에서는 사용자 범위 등 최대 쟁점 사안은 시행령에 위임하는 내용으로 담겼습니다.
제2조 5호에서 규정한 노동쟁의 대상도 현행법의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를 '근로조건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확대했습니다. 노사가 결정하는 사안이 아닌 현재 시행 중인 근로조건에도 쟁의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 제한을 골자로 하는 노조법 제3조도 쟁점 사안입니다. 기존 노란봉투법에는 법원이 파업으로 인한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더라도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정부안에는 현대차 판례를 반영해 파업에 참여한 모두가 '연대책임'을 지는 점은 유지하되, 법 시행 이후에는 파업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개별 책임질 수 있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존안에는 부칙 제1조에는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이번 정부안에서는 1년으로 연장됐습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노조법 2.3조 즉각 개정’을 촉구하며 농성중인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김재연 진보당 대표를 비롯한 의원 등과 면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솔 진보당 의원, 김 대표, 정헤경 의원, 김 장관, 양 위원장,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 (사진=뉴시스)
주 4.5일제·정년연장 등 노동현안 '산적'
노동계는 이 같은 정부안에 크게 반발했습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지난 23일 전국 민주당사 점거 농성에 이어 25일부터 국회 앞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22대 국회에서 통과한 법을 노동부와 국회가 1년 유예하겠다고 한 것에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특수고용 플랫폼 및 하청 노동자도 노조를 결성하고 원청과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 손배 가압류가 노동 3권을 훼손하면 안 된다"고 소리 높였습니다.
김 장관은 양 위원장을 만나 "후퇴했다는 정부안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국회에서 입법한 것을 잘 지원하고 뒷받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누구보다 이 법이 빨리 시행되길 바라는 노동자 출신의 국무위원으로서 제가 할 도리를 다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도 24일 국회 환노위원장실 항의 농성을 벌이며 압박 수위를 높였습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오는 28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후퇴 저지 및 신속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엽니다.
첫 친노동 법안부터 노·정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첫 민주노총 출신 고용부 수장 임명에도 이재명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우려가 나옵니다. 과거 진보정권에서도 노동계와의 갈등이 개혁 과제를 추진하는 데 있어 제동이 걸린 바 있습니다.
김대중정부는 1998년 IMF 구제금융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 기구로 노사정위를 출범했지만, 정리해고제 등을 두고 민주노총의 반발로 노사정위에서 탈퇴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후 민주노총은 여전히 사회적대화에 복귀하지 않고 있습니다.
노동계 지지를 기반으로 출범한 노무현정부도 2003년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과 비정규직 보호법 처리 과정에서 핵심 지지층인 노동계 이탈이 국정 동력 약화로 이어졌다는 평가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노동 공약'이 역대 정권에 비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는데요. 이번 정부안에서도 노동계의 핵심 요구가 상당 부분 제외되면서 반발이 거센 모습입니다. 지난달 확정된 2025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2.9%에 그친 것도 노동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한국노총은 당시 "이재명정부의 출범으로 저임금 노동자는 윤석열정부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지만 오늘 그 기대치를 충족하지는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란봉투법 이외에도 법정 정년연장, 주 4.5일제, 포괄임금제 개정 등 노동 현안이 산적한 상황입니다. 정부는 주 4.5일제의 경우 인공지능 등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을 향상시켜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김 장관은 정년연장에 관해서는 "청년과 상생 가능한 해법을 사회적 대화로 도출해 연내 입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