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건진법사 전성배씨가 KT 최고경영자(CEO) 인선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자신의 배후에 대통령 내외(윤석열·김건희)가 있다는 점을 은연 중에 내세우면서 청탁 관문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됩니다. 전씨는 연임에 도전하던 구현모 전 KT 대표 측에 대가성 금품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구현모 전 대표의 연임 좌절과 함께 CEO 공백기를 거친 KT는 우여곡절 끝에 현 김영섭 대표 체제를 맞았습니다. 김영섭 대표는 CEO 후보군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한 깜짝 인사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인 없는 소유분산기업이라는 점을 이용, 김대기·이관섭·이복현 등 대통령실을 비롯한 여권 실세들이 불법적으로 경영진 교체를 주도했다는 것이 KT를 둘러싼 의혹의 골자입니다.
"건진, 윤씨 부부 내세워 영향력 과시"…민원 통로
6일 KT 안팎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건진법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양재동 세력 내에서 KT CEO 인선 작업에도 공을 들였다"며 "건진법사와 건진법사 네트워크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는 정치 브로커 등은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를 연결해 주거나 김건희 여사와 직접 통화하는 걸 과시하며 영향력을 행사했고, KT를 비롯해 여러 대기업의 주요 자리를 핸들링하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건진법사 전씨 세력은 당시 대기업 대관 담당자들 사이에서도 자주 언급된 민원 통로였습니다. 윤석열정부에서 대관 업무를 담당했던 한 대기업의 고위 관계자는 "전성배씨를 만나야 일이 풀린다는 말이 재계 내에서 공공연하게 퍼져 있었다"면서 "이슈가 있는 기업들은 수소문해서 (건진법사를) 만나려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건진법사 전성배씨가 5월12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두번째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특히 KT는 정권교체와 함께 거센 외풍에 맞닥뜨린 상황이었습니다. 2022년 11월8일 구현모 전 KT 대표는 연임 도전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KT 이사회 규정에 따라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에서 연임 우선심사를 했고, 12월13일 구 전 대표는 적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실적과 주가 등 경영 지표에 대한 시장의 평가도 무난했습니다.
하지만 KT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의 반대를 앞세워 윤석열정부의 비토가 계속됐습니다. 구 전 대표는 복수 후보 심사 검토를 요청하고 사내·외 28명과 경합해 12월28일 차기 CEO 후보로 확정됐지만, 2023년 2월 공개경쟁 방식으로 차기 CEO 선임이 재추진됐습니다.
"건진 측, KT와 비밀 회동…수십억 요구"
정권 차원의 외압이 지속되자 건진법사와 당시 KT 고위 관계자가 비밀리에 만나는 자리도 마련됐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전직 KT 고위 임원 A씨는 "KT의 CEO 경선이 진행됐던 2022년 말 KT 고위 관계자들과 전성배씨가 서울 강남 모처에서 만났고, 이 자리에서 금품에 대한 직접적인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건진법사 측의 요구는 수십억 원대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KT는 해당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A씨는 "CEO 교체 과정에서 정치 브로커가 엮이는 사건들이 지속된 까닭에 다들 내성이 있어 금전적 거래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다른 기업들보다 컸다"며 금전적 요구를 거절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KT가 제안을 거절하자 건진법사 측에서는 "더 이상 이야기할 게 없다"고 답했다는 것이 A씨의 부연입니다.
구현모 전 대표는 이와 관련해 "(건진법사) 얘기는 많이 있었고, 거기를 통해야 뭐가 된다는 얘기도 있었다"면서도 "그 사람을 본 적도 없고, 만날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 사옥의 모습. (사진=뉴시스)
"용산, 사외이사 사퇴 요구…김건희특검 수사 대상"
2023년 2월9일 세 번째 CEO 선임 절차를 시작하기 약 한 달 전에는 이강철 사외이사가 사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노무현정부 인사였던 그는 2018년 황창규 전 KT 회장 재임 시절 KT 사외이사로 선임된 이후 KT 정관에 따라 연임됐는데, 임기 만료 1년을 남기고 갑자기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이에 대해 KT 전직 고위 관계자는 "용산으로부터 이강철을 내보내라는 메시지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차기 CEO 인선을 결정하는 이사진에까지 용산의 손길이 미친 것입니다. 이러한 외풍 속에 구현모 전 대표는 2월23일 결국 연임을 포기했습니다.
건진법사를 둘러싼 의혹이 하나둘 꼬리를 드러내면서 김건희특검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수사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졌습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김건희씨가 직접 관여하거나, 김건희씨와 건진법사가 손을 잡거나, 건진법사 단독으로 개입하거나 등이 여러 기업들에 혼재된 모습이지만 (결과적으로) 인사와 이권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특검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주요 범죄 중 하나인 인사 개입에 대해서는 수사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