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의 독자적 전쟁 기획 능력을 갖춰야 한다"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전작권 환수가 '필수'인 이유

입력 : 2025-08-08 오전 6:00:00
"대한민국을 위한 국제연합(UN)의 군사적인 공동노력으로 말미암아 귀하가 UN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돼 대한민국과 그 인접지역에서 싸우고 있는 모든 UN군이 귀하의 작전 지휘하에 편입되게 된 사실에 비춰 본인은 현 적대행위의 사태가 계속되는 동안 대한민국 모든 육·해·공군의 지휘권(commmand authoruty)을 이양하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는 바이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14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더글러스 맥아더 UN군 사령관에게 이런 내용의 서한을 보내 한국군 지휘권을 넘겼다. 한국군 작전지휘권을 둘러싼 오랜 논란의 출발점이었다. 1973년부터 3년간 UN군 사령관으로 근무한 리처드 스틸웰은 이를 "지구상에서 가장 놀라운 형태로 주권을 양보한 사례(The most remarkable concession of sovereignty in the entire world)"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29일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CH-47 치누크 헬기가 가 이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구상에서 가장 놀라운 형태로 주권 양보한 사례"
 
이렇게 작전지휘권을 넘겨받은 UN군은 처음에는 한국군 지휘부를 통해 간접적, 형식적으로 지휘권을 행사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다 1991년 5월 한국군 3군단(군단장 유재흥)이 강원도 인제 현리 전투에서 전체 병력의 60%를 상실하는, 한국전 전체로도 최악의 대패를 당하자 미군은 3군단을 해체하고 육군본부의 지휘권도 박탈하면서 한국군 전체에 대한 지휘권을 직접 행사하고 나섰다. 한국군 지휘권이 실질적으로도 완전히 유엔군에 넘어가 버리게 된 것이다. 
 
1978년 유엔사와 분리된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면서 작전권은 미군 대장이 사령관을 맡는 한·미연합사로 넘어갔다. 헌법과 같은 수준으로 한국과 한국군을 지배해온 작전권에 대한 변화 흐름을 만든 건 노태우였다. 1987년 대선에서 당시 집권당의 노태우 후보가 처음으로 '작전통제권 재조정 및 용산기지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지휘권을 갖지 못한 것은 주권국가로서 창피한 일이었다"는 것이었다. 최근 언론 기사나 칼럼에서 작전권 문제를 거론하면서, 이념 논란 소재로 삼기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 환수를 주장한 것처럼 소개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수준도 안 되는 얘기다. 
 
그 뒤 북한 핵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보수층 반발이 격해지자 노태우정부는 작전권을 평시와 전시로 분리했고, 결국 김영삼정부가 1994년 12월 평시작전통제권만 환수했다. 전시 작전권과 평시 작전권이 분리되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작전권은 전쟁 상황 대응이 기본 아닌가. 이런 한계 때문에 한국군은 평시에도 작전 계획 수립, 위기 관리, 교리 발전, 연합 연습, 정보 관리, C4I 상호 운용성 등 6개 핵심 사항은 다시 한·미 연합사령관에게 위임하게 됐다. 이것이 바로 '코다(CODA, Combined Delegated Authority)', 연합 권한 위임 사항이다. 이렇게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는 과제로 남겨졌다. 
 
결국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7년 2월에 한·미는 2012년 4월17일에 전작권을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전환 날짜를 4월17일로 정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지휘권을 넘긴 7월14일을 의식한 것이었다. 그러나 'Anything but 노무현'(노무현만 아니면 무엇이든)이었던 이명박정부는 전작권 전환 시기를 2015년 12월1일로 연기했고, 뒤이은 박근혜정부는 '조건에 기초한 전환'이라는 명분 아래 사실상 장기 과제로 처박아버리고 말았다.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뉴시스)
 
미 국방부 정책차관 "전작권 전환, 가능한 한 이른 시기에"
 
신임 이재명정부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부터 전작권 환수를 공약했고,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내건 '한·미 동맹 현대화'에도 아직 명시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특히 현재 미국 국방정책의 핵심으로 꼽히는 앨버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한국군이 더욱 자율적이고 독자적으로 작전할수록 좋다고 생각하며, 전작권 전환은 가능한 한 이른 시기에 이뤄져야 한다"면서 "한국이 준비가 안 됐더라도 전작권 전환의 준비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달 말로 예상되는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한국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현재는 2.32%)으로 대폭 증액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핵심적인 의제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작권 전환은 주한미군 역할 변경을 의미하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맞물려 핵심적인 한·미 간 안보 현안인 것은 분명하다. 주한미군의 초점을 '북한 억제'에서 '중국 견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정부의 기조이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철수 얘기만 나오면 발끈하던 <조선일보>가 주필 칼럼에서 "주한 미군 없으면 큰일 날 것처럼 하는 국민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나선 것도 이런 상황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한·미 관계가 격변하는 상황에서 전작권 전환 문제는 신중하게 다뤄야 할 사안임은 분명하지만, 한국군의 자체 능력 향상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34년 군 생활 동안 한·미 연합사 작전처장,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 6군단장, 육군 교육사령관 등을 역임한 강건작 전 육군 중장(육사 45기)은 지난 3월에 낸 '한국군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강군의 조건'에서 이렇게 썼다. 
 
"전작권이 없는 한국 합참은 한·미 연합훈련에서 주도권이 없다." 
 
"전작권이 없는 한국 합참은 연 2회 실시하는 한·미 연합훈련에서 주도권이 없다. 합참 근무 장교 대부분이 전쟁연습에 참여할 기회가 없다. 그러다 보니 내가 보아온 합참 조직에 오랫동안 몸담은 대부분의 한국군 장군과 고위 장교는 유사시 한반도에서 전쟁을 수행할지에 대한 기본적인 군사 지식도, 관심도 없었다. 그들 중에 많은 수가 한국군 3성, 4성 장군이 된다. 그리고 그 계급의 힘으로 한국군 정책을 주도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따로 없다."(163쪽)
 
한국군은 세계 군사력 5위라고 꼽히지만 그것은 하드웨어에 대한 것일 뿐, 소프트웨어는 그에 한참 못 미친다는 통렬한 토로다. 
 
"스스로 전쟁을 기획할 능력이 없고 전쟁 수행 방법을 창안하지 못하는 군대는 그 소임을 다할 수 없다…지금까지는 연합사가 전작권을 갖고 있는데 한국군 단독으로 전쟁 기획을 할 필요가 있는가에는 부정적 의견이 팽배했다…지금부터라도 대한민국 군대는 한국 합참이 주도해 전쟁 기획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절치부심해야 한다."(192~194쪽)
 
그래서 "한국군의 독자적인 전쟁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극히 당연하지만 너무 늦은 얘기 아닌가.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박주용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