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인류 문명의 기원을 숨기고 있는 괴베클리 테페

터키 남동부, 우르파 평원의 신석기 시대 거석 유적을 둘러싼 논쟁

입력 : 2025-08-13 오전 9:06:37
지붕이 씌워진 괴베클리 테페 유적지의 모습. 관람객들은 둘레의 보드워크를 따라 걸어가며 유적지를 관람한다. (사진=백완기)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터키-시리아 국경 인근 샨르우르파 주에는 우르파 평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여름 낮 기온이 40도를 웃돌며, 바람이 불때마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는 이곳은 결코 살기 좋은 환경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황량한 고원 위에는 ‘배불뚝이 언덕’이라는 뜻의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가 있습니다. 인류가 정착해 농경사회를 이루기 전인 기원전 9600년경,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유적입니다. 
 
1963년 터키–미국 공동 조사팀이 처음 발견했을 당시, 이곳은 단순한 중세 묘지로 오인됐습니다. 1994년,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Klaus Schmidt)가 재조사 끝에 신석기 시대 초기의 거석 구조물임을 확인했고, 1995년부터 2014년까지 독일 고고학연구소(Deutsches Archäologisches Institut) 주도로 대규모 발굴이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습니다. 
 
T자형 기둥과 동물 부조
 
괴베클리 테페의 중앙에는 석회암을 깎아 만든 높이 3~6m, 무게 10톤이 넘는 T자형 거석 기둥 두 개가 서 있습니다. 기둥 표면에는 사람의 팔과 손, 그리고 사자·여우·멧돼지·전갈·새 같은 다양한 동물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둘레에는 크기는 좀 작지만 역시 T자형의 기둥들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유적은 기존 구조물을 매립하고 새로운 기둥을 세우는 방식으로 조성되었습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발굴된 구역은 전체 유적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 결과, 그 조성 시기는 기원전 9600년경으로 확인됐습니다. 
 
표면에 동물들의 모습이 새겨진 돌기둥. (사진=백완기)
 
대안적 역사해석과 음모론
 
고(故) 클라우스 슈미트는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종교적 건물보다는 초기 공동체가 사회적 결속을 다지는 의식을 치렀던 장소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지만, 문자가 없던 1만2000년 전 유적의 정확한 용도를 밝히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영국 저널리스트 그레이엄 핸콕은 넷플릭스 시리즈 〈고대 묵시록(Ancient Apocalypse)〉에서 주류 고고학계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쳐왔습니다. 그는 괴베클리 테페가 빙하기 대재앙 이전에 존재했던 고도로 발달한 ‘잃어버린 문명’의 산물이며, 소행성 충돌이나 급격한 기후변화로 문명이 멸망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자칭 ‘고대 역사 수사관(ancient history investigator)’ 지미 코르세티가 가세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고대사는 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줄곧 주장해왔던 인물입니다. 
 
조 로건, 팟캐스트로 가설과 음모론 확산
 
코미디언이자 UFC 해설자로 유명한 조 로건은 2009년부터 팟캐스트 〈익스피어리언스(Experience)〉를 진행하며 대안 역사와 음모론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핸콕과 코르세티를 초대해 이들의 주장을 널리 알렸습니다. 2024년 11월, 코르세티는 로건의 방송에서 유적 발굴이 의도적으로 지연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전체 유적의 발굴이 5~10%에 불과하다며, 매립 시점과 기후변화의 연관성을 숨기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발굴 책임자의 경고
 
현재 발굴과 보존을 이끄는 독일 고고학연구소의 리 클레어(Lee Clare)는 이러한 음모론에 우려를 나타냅니다. 그는 “서로 다른 서사들이 경쟁하다 보면, 과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진짜 이야기가 가려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괴베클리 테페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단 하나, 약 1만2000년 전 인간이 만든 거석 유적이라는 것뿐입니다. 그 밖의 해석은 추정에 근거한 가설일 뿐이며, 이 불확실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하고 있습니다. 
 
산르우프파 박물관에는 돌기둥의 부조를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Wikipedia)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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