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얼마 전 무심코 TV 채널을 돌리다가 깜짝 놀랐다. 분명 IPTV 채널을 돌리고 있었는데 '디즈니+ 오리지널(자체 제작)'인 드라마 <카지노>의 장면이 흘러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MBC에선 '특선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드라마 <카지노>가 방영 중이다. 공중파 방송에서 제작한 드라마가 자체 채널에서 먼저 방영한 후 시간차를 두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옮겨 가던 것도 옛말. 이제는 OTT 플랫폼이 제작하고 송출한 인기 콘텐츠가 공중파 방송에서 뒤늦게 방영되는 실정이다.
<카지노>는 2022년 12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시즌 1, 2로 나눠 송출된 디즈니+ 오리지널 작품이다. MBC는 이를 2025년 7월부터 9월까지의 일정으로 주말 황금시간대에 편성했다. 과거 공중파 주말 드라마 황금시간대로 여겨졌던 시간대를 OTT 콘텐츠에 내준 셈이다. 공중파 방송이 콘텐츠 제작 능력에서 해외 거대 자본을 앞세운 OTT에 밀리고, 하나의 채널 창구로 전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겠다.
해외 OTT 디즈니플러스는 지난 2021년 11월12일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공중파는 자존심을 세울 여유가 없다. 드라마 성적표가 10%대 초반만 돼도 초 히트작으로 불리는 요즘 시대, 현재 MBC에서 방영 중인 <카지노> 시즌 2는 전국 기준 2.8~4.8%가량의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이 정도면 꽤 준수한 기록이다. 인기가 없으면 1%대 시청률도 면하지 못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실제로 최근 방영되기 시작한 'MBC 오리지널'인 한 드라마의 성적표는 1%대의 처참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시청률이 중요한 것은 광고 매출과 직결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기획해 만들든, 다른 곳의 콘텐츠를 구입해 방영하든, 일단 방송사 입장에서 시청률은 잘 챙겨야 한다. 그래야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한다. 그런데 콘텐츠 무한 경쟁의 시대, 목구멍에 풀칠하는 것만으로는 오래갈 수 없다. 공중파 방송이 조용하게 침몰 중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공중파도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이처럼 방송 시장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현재 OTT가 황금기를 누리고 있는 중이긴 하나 이러한 추세마저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콘텐츠 미디어업계의 트렌드 변화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시리즈물 외에 숏츠 콘텐츠 또한 강력한 포맷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매체의 성격은 다르지만 콘텐츠 시장의 또 다른 주요 플레이어인 게임업계와 웹툰업계 종사자들은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가 누구냐는 질문에 숏츠를 첫손에 꼽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콘텐츠 미디어 시장의 급변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낡은 규제가 여전히 시장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방송법과 통신법으로 분리된 칸막이식 규제는 매체별로 다른 기준을 적용, 규제 비대칭을 심화시키고 있다. 공중파 특성상 광고 및 편성 규제가 아예 사라질 순 없겠지만 이들 전통 미디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한 요소가 되고 있음은 자명하다. 또한 방송발전기금 납부 등 재원 규제는 국내 기업들의 콘텐츠 투자 여력을 제한하는 반면, OTT는 이러한 의무에서 자유로워 경쟁 환경이 불공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제라도 서둘러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 통합적인 법 체계와 거버넌스 개편을 통해 미디어 업계 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K-콘텐츠를 지원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