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윤석열정부 시기 출범한 포스코 ‘장인화호’가 현 정부 들어 연이은 주요 행사 불참으로 ‘패싱’ 우려가 제기되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입니다. 불참 배경에 대해 일부에서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고 아직 정권 초기인 만큼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오지만, 역대 정권 사례를 감안할 때 앞으로도 포스코 ‘배제’ 기류가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향후 연임 등을 앞둔 포스코 내부에선 전전긍긍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이 지난 6월9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호텔에서 열린 철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포스코그룹)
최근 포스코그룹이 지난 6월부터 이어진 대통령 행사에 연이어 불참하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민임명식이 열린 가운데 이날 재계에서는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을 제외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10대 그룹 총수가 참여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최 회장을 포함해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경제 6단체장도 모두 참석했습니다.
장 회장의 불참 배경에는 포스코이앤씨에서 올해 들어 벌써 다섯 차례의 안전사고가 발생한 점이 내외부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포스코는 “전사적으로 안전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현안에 집중하기 위해 대통령실에 불참 의사를 사전에 전달하고 양해를 구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장 회장은 지난 6월 대통령실에서 열린 5대 그룹 총수·경제 6단체 회장 간 경제인 간담회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간담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참석했습니다. 자산총액 기준 6위로 5대 그룹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포스코의 입장이었습니다.
당시 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미국이 50%의 수입관세를 부과하는 등 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철강업계의 대표인 포스코가 대통령 간담회에서 참석하지 못한 것을 두고 패싱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정부와 공조 방안을 논의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컸던 만큼, 포스코가 간담회에 동석했어야 했는데 재계 서열이라는 이유로 불참한 것은 석연치 않다는 지적입니다.
정권 교체마다 잇따른 '패싱 논란'
이번 장 회장의 대통령 행사 연속 불참을 두고, 업계에서는 또다시 포스코 ‘패싱’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포스코 ‘잔혹사’는 포스코를 설립한 박태준 명예회장이 김영삼정부가 출범한 1993년 횡령 혐의로 물러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최정우(9대) 전 회장을 제외하고 2대인 황경로 전 회장부터 정명식·김만제·유상부·이구택·정준양·권오준 전 회장 모두 정권 교체 후 임기를 모두 제대로 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본격적인 포스코 ‘패싱’은 정준양 전 회장 시기부터 뚜렷하게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전까지 역대 포스코 회장들은 대체로 검찰 수사를 거치며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퇴진했지만, 정 전 회장부터는 정권 교체기에 대통령 행사에서 배제되는 이른바 ‘패싱’ 사례가 본격화됐습니다.
정 전 회장은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으나,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국빈 만찬에는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같은 해 8월에는 청와대에서 열린 10대 대기업 회장단 오찬 회동 명단에서도 제외됐습니다. 당시 포스코는 재계 자산 순위 6위였습니다. 이에 패싱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순수 민간기업만 참석 대상으로 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후 권오준 전 회장 시절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제사절단 배제가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2017년 6월 문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 경제사절단에서 제외됐고, 이어 인도네시아와 중국 방문 경제사절단 명단에서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중국 방문 당시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사절단이 구성됐음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지 못하면서 결국 2018년 7월 중도 사퇴했습니다.
포스코를 재계 5위까지 올려놓은 최정우 전 회장 체제에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2023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4월 미국, 6월 베트남 등 주요 해외 순방 경제사절단 명단에서 연속 제외됐습니다. 국내 주요 행사에서도 불참은 이어졌습니다. 2023년 1월과 2024년 1월 경제계 신년 인사회, 2023년 5월 열린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도 최 전 회장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인화 회장 역시 윤석열정부 시절 각종 순방 일정에 동행했지만, 지난 6월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 동안 대통령 행사에 잇따라 불참하면서 뒷말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정권 초기 단계이기도 하고, 불가피한 사정도 있기에 성급한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지만, 업계에서는 포스코를 둘러싼 배제 흐름이 이번 정부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패싱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성급한 면이 있다”라면서도 “하지만 역대 사례를 살펴볼 때, 패싱 기조를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패싱’ 배경은 ‘소유분산기업’?
포스코가 이처럼 ‘외풍’에 흔들리는 배경에는 특정 대주주가 없는 ‘소유분산기업’ 구조가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지분 8.32%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고, 나머지는 다양한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들로 분산돼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정치적 외압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지배구조지만, 최대주주가 공적기금인 국민연금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는 남아 있는 셈입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포스코는 민간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주인 없는 기업’”이라며 “오너 경영 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정권의 입김에 따라 경영진 교체 가능성이 존재하고, 제한적이지만 인사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