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대통령의 비중과 경륜을 볼 때 이제 한반도 문제는 김 대통령께서 주도해주기 바랍니다. 김 대통령이 핸들을 잡아 운전하고 나는 옆자리로 옮겨 보조적 역할을 하겠습니다."
1998년 2월에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그해 6월(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을 방문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했다. 클린턴은 앞으로 한반도 문제는 DJ가 주도해달라고 요청했다. 남북 관계에서 '운전자론'이 처음 등장한 순간일 것이다. DJ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매우 기뻤다. 그것은 우리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대북정책을 주도하게 됐음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발언이었다"고 2010년에 낸 자서전에 썼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며 함께 웃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98년 클린턴 "DJ 핸들 잡고, 나는 보조 역할"
클린턴의 '운전석 양보'는 그저 '립서비스'가 아니었다. 북한의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과 대포동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정세가 급랭된 1998년 11월, 클린턴은 윌리엄 페리를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국방부 장관으로서 "전면전을 준비하면서 영변 핵 시설을 공격해야 한다"며 '북폭론'을 주장했던 강경파였으니, DJ정부는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자들을 두루 만나 자신의 안을 마련한 페리 조정관은 1993년 3월에 청와대를 방문했다. "저희 팀이 만든 대북 구상을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대통령은 미국의 어떤 대북정책도 한국과 정책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김 대통령께 보고하고 의견을 구하라고 특별히 지시했다"며 자신이 구상한 대북정책, 일명 '페리 프로세스'를 꺼냈다. 설명을 듣고 "이렇게 내 생각과 일치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는 DJ에게 페리는 "임동원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으로부터 좋은 아이디어를 들었다. 부끄럽지만 임 수석이 제시한 전략 구상을 도용하고 표절하여 미국 표현으로 재구성한 데 불과하다"고 답했다.
DJ와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가 겹친 1998~2000년까지 3년 만큼,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과 미국 정상 간 '케미'가 가장 잘 맞았던 때는 없었다.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사상 처음으로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다.
클린턴은 자신의 두 번째 임기 말인 2000년 겨울 평양 방문을 결심하고 국무장관까지 보내 사전 준비를 마쳤으나, 중동 정세 악화와 자신의 부통령 앨 고어를 꺾고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아들 부시의 반대로 평양 방문을 접었다.
그 이후 한국과 미국 정부는 대북정책에 대해 '대체로' 엇갈렸다. 아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만 아니면 뭐든 좋다"(anything but Clinton)면서 대북정책도 180도 뒤집었다. 그는 2001년 3월 DJ 첫 정상회담을 한 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DJ를 '대통령님(Mr. President)'이 아니라 '이 양반(This man)'으로 지칭해버렸다. 그리고 북한과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부시 대통령이 운전석을 차고 앉아 폭주해버린 것이다.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는 꽤 오랜 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노무현정부도, 문재인정부도 당연히 '운전자론'을 이어 나가려 했다. 특히 '한반도 운전자론'과 '중재자론'을 내세운 문재인정부는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을 조율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측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4월 최고인민회의 연설)고 비판했다. 다음 해 6월에는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까지 폭파해버렸다. '운전자' 역할이 끝나고 만 것이다.
그리고 2025년 현재까지 그 운전석은 방치된 채로 비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대통령께서 피스 메이커(평화 중재자)를 하시면 저는 페이스 메이커(보조자)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했다. "내가 관여해서 남북 관계가 잘 개선되기는 쉽지 않은 상태인데 실제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트럼프 대통령"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비통하지만 한국이 주도할 수 없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한 것이다.
트럼프는 4년을 건너뛴 뒤 지난 1월20일에 다시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유산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 통합을 이루는 사람(peacemaker and unifier)으로서의 유산일 것"이라고 했다. 라임을 맞춘 아재개그 같아 보이기도 하는 이 대통령의 '피스 메이커' 언급은 실은 트럼프가 가장 원하는 바를 '직격'한 것이다. 트럼프의 노벨평화상에 대한 '욕심'은 이미 유명하다. 그는 이 대통령에게 활짝 웃으며 "우리는 북한과 함께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적으로요"라고 화답했다.
2019년 6월30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기 파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에서 회담을 마친뒤, 이야기를 나누며 복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반도 운전석 방치 상황에서…이 대통령 "나는 페이스 메이커"
2023년 말에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선언한 이후 북한의 남한에 대한 태도는 완강하다. 이재명정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연일 '미국의 특등 충견', '망상' 같은 표현으로 비하하고 비난한다. 미국에 대해서는 비판해도 그 강도가 약하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우리 국가수반과 현 미국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북한을 '핵 보유국'(nuclear power)이라 부르며 기회 될 때마다 대화 의지를 밝혀온 트럼프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분명하다. 지금 한반도의 피스 메이커라면 그건 트럼프 몫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03년 초 '2차 북핵 위기' 국면에서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원한 반면 미국은 다자 회담을 주장하자, 중국의 중재로 미국, 북한, 중국만의 3자 회담이 열리게 됐다. 한국이 배제된 난감한 상황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모양새보다는 북핵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하다"고 수용하면서, 이를 남·북·미·중·일·러가 참여하는 6자 회담으로 확대하기 위해 진력했고, 결국 이후 국면은 6자 회담으로 굴러갔다.
현 상황은 그때보다도 안 좋다. 한국이 보조적인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하더라도 대화 자체가 완전히 끊긴 상황을 바꿔놔야 한다. 지금부터 2028년까지 이재명-트럼프 두 대통령의 임기가 일치하는 앞으로의 4년이 북핵 문제를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미 늦은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기회를 살려낼 수 있다면 그때 다시 우리가 운전석에 올라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