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미국 이민당국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하면서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300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불범 체류 혐의로 손발이 묶인 채 구금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습니다. 미국의 요청대로 제조업 부활을 위해 한국이 수백조원의 투자를 약속했음에도 불법 이민 단속을 강화한 미 당국의 이중적 행보가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에 따른 불안감으로 증폭되는 모양새입니다. 무엇보다 한·미 제조업 동맹의 '상징'인 조지아주에서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대규모 단속이 진행되면서 양국의 경제 공조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사진=연합뉴스)
현장대책반 설치·구금자 면담…정부 석방 지원 '총력전'
7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구금된 한국인들의 미국 정부와 구금된 한국인들의 석방 교섭이 마무리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서울 삼청동 총리관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협의회 모두발언에서 "행정절차가 남았고, 마무리되는 대로 전세기가 국민 여러분을 모시러 출발한다"고 전했습니다.
강 비서실장은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의 법 집행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권익과 대미 투자 기업의 경제활동이 부당하게 침해돼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해당 사안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총력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향후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및 관련 기업 등과 공조 하에 대미 프로젝트 출장자 체류지와 비자 체계를 점검해 개선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지난 4일 미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이 조지아주 서배너 엘라벨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압수수색을 펼쳤습니다. 외교부에 따르면 300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조지아주 폭스턴 인근 이민세관단속국 이민자 수용 시설로 연행됐습니다.
외교부는 6일(현지시간) 미 이민세관단속국 구치소에 구금된 한국인들의 건강 상태 등을 확인하기 위한 영사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7일까지 한국인 면담을 모두 마치겠다는 계획입니다. 조기중 주미대사관 총영사를 중심으로 서배너에 현장대책반을 꾸리고 현장 대응을 강화했습니다. 이어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앨리슨 후커 미 국무부 정무차관과 통화하고 한국인 구금 사태와 관련한 미 당국의 협조를 당부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박 차관은 한국인들의 체포 영상이 공개된 데 대해선 유감을 표했습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한국인 구금 사태 해결을 위해 이르면 8일 미국 방문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조 장관이 미국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 등 행정부 주요 인사들을 만나 한국인들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돼선 안 된다는 점을 주문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또 조속한 석방을 위한 협조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선 같은 날 외교통일위원회 현안질의를 실시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 투자 요청·이민 단속 '엇박자'…한·미 경제협력 '시험대'
이번에 단속이 이뤄진 조지아주는 한·미 제조업 동맹의 상징성을 지닌 곳이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제조업 부활을 위해 각국의 대미 투자를 독려하면서도 뒤로는 대규모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모순된 행태를 보인 것인데요. 특히 한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3500억달러(약 488조원) 이상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 한국 기업의 수백조원 투자 약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 당국이 대대적인 이민 단속을 벌인 것은 이중적 태도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오락가락하는 '트럼프발 리스크'에 양국의 제조업 동맹도 흔들리는 양상입니다.
현지에 투자한 국내 기업들은 앞으로 미 당국이 불법 체류 단속을 이유로 규제한다면 대미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관세정책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이민 문제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갈수록 악화하는 미국 내 사업 환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서둘러 외교적 해법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미 정부 사이에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이른바 '핫라인'이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앞서 강훈식 비서실장은 정상회담 이후 수지 와일스 미국 백악관 비서실장과의 핫라인을 구축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현 사태에 대한) 검토가 완료되는 즉시 미국 상원 및 하원 국회의장에게 현재 상황 해결을 위한 공식서한을 보낼 것이고, 한·미 의원연맹 차원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초당적 사태 해결방안 모색도 제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당인 민주당은 "국민과 함께 엄중하게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현 사태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했습니다. 다만 민주당 내 정치 행동·정책 의견그룹인 '더좋은미래'에선 성명을 통해 "한·미 동맹과 대미투자 요구에 상응해 우리 국민을 제대로 예우하라"며 "미국이 진심으로 우리 기업의 투자 유치를 원한다면 이런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외교통일·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원장·간사 등과 긴급회의를 열어 한국인이 구금된 데 대해 "미국이 대한민국을 향해 가장 강력한 형태로 표현한 외교적 불만"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이 대통령이 직접 트럼프 대통령과 해결할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