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국내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자 정부가 직접 현장 압박에 나섰습니다. 위기에 처한 석유화학산업을 살리겠다며 구조조정 카드를 꺼냈지만, 업계의 자율 논의가 진전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산업 구조조정 의지를 강조하며 석유화학산업의 신속한 사업 재편을 촉구했습니다. 사실상 정부가 자율 감축이라는 이름으로 기업들에 공을 넘겼지만, 뚜렷한 논의가 없자 속도전을 주문하고 나선 것입니다.
김정관 "속도 내서 사업 재편 계획 빠르게 마련해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9일 울산 석유화학산업단지를 방문해 '울산 석유화학기업 사업재편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김 장관의 석유화학업계 현장 간담회는 취임 이후 이번이 처음입니다. 간담회는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의 차질 없는 이행을 위해 울산 지역 석유화학기업의 속도감 있는 사업 재편 협의를 촉구하고, 관련 애로 사항과 정부 지원 사항을 청취하고자 마련됐습니다. 울산 석유화학산업단지는 여수와 대산 단지까지 포함한 3대 산단 가운데, 유독 사업 재편 논의가 더디다는 지적이 제기된 곳입니다.
김 장관은 "기업 간 진행 중인 협의에 속도를 내어 사업 재편 계획을 빠르게 마련해 달라"면서 "정부도 맞춤형 패키지 지원 방안을 마련해 기업의 사업 재편 계획 이행을 위해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SK지오센트릭, S-oil, 대한유화 산업현장을 방문해 생산 및 안전관리 현황 등을 종합 점검하며 "신속한 설비 합리화와 동시에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구조를 전환해 석유화학산업의 재도약을 이뤄내자"고 강조했습니다.
또 S-oil 샤힌 프로젝트 건설 현장에 방문해 "건설 과정에서 근로자들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진행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김 장관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석화산업 구조개편은 정부, 기업, 금융권이 공동 작품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10월 정도에는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습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9일 울산 남구 석유화학산업단지에서 한국화학산업협회, S-oil, SK 지오센트릭을 비롯한 관련 유관기관 및 석유화학기업 대표 등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울산 석유화학기업 사업재편 간담회'를 열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산업부)
석화업계 입장 '제각각'…압박 수위 높이는 정부
정부는 지난 8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석유화학산업 구조 개편 3대 방향과 정부 지원 3대 원칙 등을 포함한 '석유화학산업 재도약 추진 방향'을 발표했습니다. '선 자구노력-후 지원'을 원칙으로 업계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 입장입니다. 업계가 먼저 자구 노력을 보여주면 정부가 업체의 동참 정도를 고려해 맞춤형 지원책을 추진하겠다는 게 골자입니다. 이를 통해 270~370만톤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NCC)을 감축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사실상 자율 감축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기업들에게 공을 넘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석유화학업계는 같은 날 산업계 자율컨설팅 결과를 반영해 △270만~370만톤 규모의 NCC 감축 △고부가·친환경 제품으로의 전환 △지역경제 및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 최소화 등을 담은 '산업계 사업재편 자율협약'을 체결했습니다.
하지만 협약을 맺은 지 한 달여가량 됐지만 뚜렷한 가닥을 잡지 못하고 논의만 공전하고 있는 게 업계 현실입니다. 자율 협상 원칙 속 서로 입장 차만 확인되고 있을 뿐, 아직까진 구체적 합의나 실행 계획은 없는 상태입니다. 기업마다 사업 구조나 재정 상황에 따라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다른데다, 기업 간 이해관계가 얽혀 통합 작업이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기업별 천차만별인 운용 실적과 인근 공급망에 미칠 나비효과를 감안하면 해법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당초 제시한 구조조정 시한까지 10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업계 눈치싸움만 이어질 경우 로드맵이 지연되고 구조조정 효과가 반감될 수 있기에 여유 있게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이에 압박 수위를 높여 신속한 사업 재편에 속도전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산업부는 "기업들의 사업 재편을 지원하기 위한 산단별·기업별 '사업재편 민관협의체'를 통해 범부처와 기업 간에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며 "향후 대산·여수 석유화학 산단도 순차적으로 방문해 구체적인 사업 재편 현황을 논의하고 산업 구조 개편을 차질없이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