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무대로 하는 미국과 중국의 관세 협상 '최종 담판'이 다가오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다시 손을 내밀었습니다. 희토류 통제와 반도체 통제라는 미·중 사이의 맞불 전략이 악순환 고리에 빠지자 유화책을 꺼내 든 겁니다. 하지만 미·중 정상회담이 아직 2주가량 남은 시점에서, 치킨게임의 승자를 가리기 위한 양상은 당분간 반복될 전망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기폭제 된 '반도체·희토류'…서둘러 '진화' 작업
1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매우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치켜세우며 "미국은 중국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도우려는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이는 "2주 뒤 한국에서 열리는 APEC 회의에서 시진핑과 만날 예정이었지만,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밝혔던 며칠 전 발언과는 결을 달리합니다.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관세 전쟁에 대한 불길이 치솟을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시작된 미·중 사이의 관세 전쟁은 1기 행정부 당시의 관세 전쟁 수준을 훌쩍 뛰어넘으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비현실적 수준의 관세는 지난 5월, 고위급 무역 회담을 거치며 최근까지 '휴전' 국면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달 19일 통화를 통해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하는 정상회담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휴전 기간에도 조금씩 수출과 자원 수출의 벽을 높여온 미·중 사이의 갈등은 정상회담이라는 '최종 담판'의 장을 앞두고 폭발했습니다. 기폭제는 상대방의 역린에 해당하는 '희토류'와 '반도체'의 수출 통제였습니다.
지난 9일 중국 상무부는 5종의 희토류 원소 수출 통제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4월 7종의 희토류 원소 통제 발표에 더한 것으로, 이번에는 자국산 희토류가 극미량이라도 포함되거나 자국 채굴·제련 등의 기술을 활용한 제품까지 규제 대상에 올렸습니다.
중국의 이 같은 통제 조치는 미국의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FDPR은 미국의 기술과 소프트웨어 등을 이용해 해외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통제하는 규칙입니다. 결국 미국의 반도체·인공지능(AI) 칩 설계 소프트웨어 관련 규제에 대한 맞불인 셈입니다.
문제는 중국의 희토류 통제가 미국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이 희토류의 자급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희토류는 채굴과 정제 과정에서의 환경오염이 심각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에서의 가격 경쟁력이 높을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또 미국이 단기간에 장비와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습니다.
이에 중국은 단순한 희토류 수출 통제를 넘어 채굴·제련 등의 생산 기술까지 통제하며, 미국을 옥죈 겁니다. 게다가 대두 수입 금지와 배터리 수출 제한 조치 등 사안마다 미국의 약점을 겨냥하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맞불' 전략 대신 "시 주석과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거듭 밝히며 유화책으로 선회한 모습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중동 방문차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화의 끈 '유지'…노딜 회담 우려 '여전'
미국과 중국의 치킨게임이 악순환 고리에 빠지기는 했지만, 양국 모두 대화의 끈 자체를 놓은 건 아닙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추가 관세 100%의 타임테이블은 11월 1일로,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하는 미·중 정상회담 이후입니다.
중국의 희토류 통제 조치 역시 12월1일부터 적용되는 사안인데요. 이날 중국 상무부가 밝힌 인공 다이아몬드와 일부 리튬 배터리에 대한 수출 통제 시행도 다음 달 8일부터 시행을 예고했습니다. 합성 다이아몬드의 경우에도 반도체 주요 부품인 만큼, 미국을 사실상 겨냥했지만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은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입니다.
그럼에도 미·중 정상회담의 성사 자체 혹은 의미 있는 결과물 도출의 가능성은 낮게 점쳐지고 있습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중국이 희토류 통제에 나선 것은 이미 트럼프 1기 행정부를 겪으며 준비가 오래된 상태에서 진행한 것"이라며 "미국의 양보가 있지 않다면 정상회담 자체의 성사 여부도 낮다"고 지적했습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지난 11일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중국의 반도체 장비 병목 현상이 대부분 해소됐음을 의미하며 이는 미·중 반도체 전쟁에 새로운 전선을 열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 1기를 거치면서 해외 의존도를 낮춰왔다는 겁니다.
때문에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노딜' 회담으로 종료된 채 양국의 관세 전쟁이 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결국 양국은 파국을 피하기 위한 2주의 물밑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압박 전술 대신 유화책을 꺼내며, 관리 모드에 들어간 모양새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