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최근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에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의 가격이 338% 폭등해 이용자들 대여 자산에 연쇄적인 강제 청산이 이뤄졌습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외부 충격에 취약한 빗썸의 레버리지 상품 설계와 시스템 결함이 드러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난 11일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관세 부과 발표로 가상자산 시장에 극심한 변동성이 발생했는데요. 대부분의 가상자산 가격이 폭락 양상을 보이자 투자자들은 보유 자산을 처분해 가치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테더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업비트, 코빗 등 타 거래소에서 테더 가격이 1700원 미만을 유지한 것과 달리, 빗썸에서는 5755원까지 폭등하는 기현상이 발생했습니다.
11일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에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의 가격이 338% 폭등해 이용자들 대여 자산에 연쇄적인 강제 청산이 발생했다. (이미지=빗썸)
빗썸의 테더 가격 폭등의 원인으론 해당 거래소가 출시한 테더 대여(랜딩 플러스) 상품이 지목됩니다. '랜딩 플러스'는 올해 6월 도입된 지 불과 4개월 만에 빗썸의 대표적 레버리지 고위험 상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김현정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사고 발생일(11일) 기준 대여 금액은 1230억원을 넘어 비트코인(BTC), 리플(XRP) 등 다른 주요 코인을 압도하며 전체 랜딩 금액의 70%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 및 협회(DAXA)의 자율협약 위반 경고에도 불구하고 빗썸은 지난 6월부터 최근까지 해당 상품을 독자적으로 운영해왔습니다.
빗썸은 400% 레버리지 상품을 운영하면서 8월 기준 6억개가 넘는 누적 테더 대여 물량을 기록했습니다. 빗썸은 이 같은 형태의 운영을 지속하다가 8월8일 비율을 200%로 줄였고, 9월24일 다시 비율을 85%까지 내렸습니다.
그러나 레버리지 상환일이 대략 1개월 후라는 점에서 200% 상품을 이용한 고객의 막대한 물량이 청산 임계값에 도달해 결국 강제 매수 주문이 발생했고, 이는 이번 시세 폭등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이번 문제의 핵심은 가격 변동성으로 인해 스테이블코인의 안전성이 붕괴하는 디페깅(가치안정성 상실) 현상이 발생하면 연쇄적으로 랜딩플러스 상품 이용자들 담보자산의 상대적 가치를 떨어뜨려 상품 이용자에게 청산을 유발한다는 점입니다. 사실상 빗썸의 자체 시스템이 청산을 유발해 가격을 끌어올리고, 급등한 가격이 다시 더 많은 청산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연쇄 반응(유동성 데스 스파이럴)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게 의원실 설명입니다.
의원실 관계자는 "랜딩 플러스로 대여가 나간 물량이 테더 매수 청산 압박으로 작동했으며 해당 시간 호가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에 고가 무렵 1억원 정도 시장가 주문이 시세를 올렸다"고 말했습니다.
이럴 경우 서비스 이용자들 상당수에겐 담보가 과도하게 소진되는 현금 청산이 발생하고, 같은 시간대 폭등한 가격으로 테더를 매수한 이용자들도 결국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김현정 의원은 이번 사태를 두고 "금융위원회의 감독 의무 소홀과 빗썸의 안전장치 무력화"라고 지적했습니다.
빗썸이 김현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테더 랜딩 서비스는 도입 한 달 후인 2025년 7월 이미 836억5000만원에 달하는 기록적인 청산 규모를 보이며 시스템 취약점을 드러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이를 알면서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생태계에 시스템 리스크를 가져올 수 있는 상품에 대한 감독 의무를 소홀히 했습니다.
비록 빗썸이 시세 급등락 시 고객 자산 보호를 위해 '주요 거래소 시세 참고' 등 안전장치를 고객에게 공지했지만, 가격이 338% 폭등하는 순간 해당 장치는 무력화됐다는 게 의원실의 설명입니다.
더욱이 일부 서비스 이용자들은 시스템 오작동으로 발생한 가격 폭등에도 빗썸 고객센터가 이를 정상 거래로 선언하고 1%의 위험관리 수수료까지 징수했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시스템 오작동으로 발생한 가격 폭등에도 빗썸 고객센터가 정상 거래로 선언하고 1%의 위험 관리 수수료까지 징수했다. (이미지=김현정 의원실 제공)
이러한 소비자 민원이 11일부터 김현정 의원실로 접수되고 이를 거래소에 사실 확인을 요구하자 빗썸은 사태 발생 이틀 만인 13일 밤 뒤늦게 시세 급등으로 인한 피해 관련 지원과 피해 사례 접수를 공지했습니다.
김 의원은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앞둔 상황에서 특정 거래소의 내부 시스템이 시장을 왜곡하고 투자자에게 대규모 손해를 전가하는 리스크를 금융당국은 사전 예방하고 막아야 했다"며 "고객들에게 공지한 안전장치 미작동으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 거래소에 엄중한 책임을 묻고 시스템 안정성 확보를 위한 금융당국의 후속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빗썸 거래소 10월11일 시세 차트. (이미지=김현정 의원실 제공)
이번 사태와 관련, 빗썸 관계자는 "지난 11일 발생한 테더 가격 급등은 특정 시점에 주문이 집중되면서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해진 데서 비롯된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같은 날 USD1의 4~5배 급등, 계엄 당시 비트코인의 단기 급락 등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관측된 만큼 전반적인 시장 유동성 부족에 따른 일시적 변동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해당 현상이 코인대여 서비스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빗썸은 이번 상황에서 자동상환으로 손실이 발생한 일부 고객에 대해 도의적 차원의 지원을 진행하고 있으며 재발 방지를 위해 마켓메이킹, LP 도입 등 거래 안정성 강화 방안을 위한 업계 차원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