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재계 서열 8위 HD현대가 최근 정기선 수석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하는 인사를 단행하면서 재계 ‘오너 3세’ 경영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정 회장의 경영 원톱 체제를 구축하면서 세대교체를 마무리한 것인데, 이에 조선업계 라이벌이자 재계 서열 7위 한화그룹의 사실상 후계자로 꼽히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의 승계 시점에 이목이 쏠립니다.
정기선 HD현대 회장. (사진=HD현대)
22일 재계에 따르면 HD현대는 최근 앞당겨 발표한 인사에서 정기선 수석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켰습니다. 2009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정 회장은 입사한 지 16년 만에 회장직에 올랐습니다.
정 회장의 승진으로 HD현대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에 이은 ‘오너 3세’ 경영 체제로 들어갔습니다. 현재 재계의 대표적인 오너 3세 경영인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입니다. 특히 정 회장은 국내 30대 그룹 중 최연소(43세) 총수이기도 합니다.
정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우리 모두가 한뜻으로 뭉쳐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는 퓨처빌더’가 될 수 있도록 전력하겠다”고 밝히며 주력 사업인 조선을 비롯해 건설기계, 정유·석유화학 등 각 사업 부문별 위기를 진단하고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정 회장은 이달 말 열리는 APEC CEO 서밋의 부대 행사로 열리는 ‘퓨처테크 포럼’에 HD현대 회장 자격으로 외부 공식 행사에 데뷔합니다.
정 회장이 오너 3세 경영 대열에 합류하면서 조선업계 맞수로 꼽히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의 승진 여부에도 관심이 모입니다. 정 회장(1982년생)과 김 부회장(1983년생)은 한 살 차이로 한화가 지난 2023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인수하면서 경쟁 구도가 형성됐지만, 여전히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 회장은 HD현대 사장 신분이던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당시 “조선업 전반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기대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사진=뉴시스)
다만, 두 사람의 승진 시점을 보면 묘한 경쟁 기류도 감지됩니다. 김 부회장이 2022년 8월 먼저 부회장으로 승진하자, 이듬해인 2023년 11월 정 회장도 부회장으로 승진합니다. 이후 김 부회장이 부회장 직함에 머무르는 동안 정 회장은 1년 만에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했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먼저 그룹 수장에 올랐습니다.
김 부회장이 그동안 사실상 그룹 후계자로 방산과 조선 등 주력 사업을 선두에서 진두지휘해온 만큼, 재계 안팎에서는 김 부회장의 승진도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특히 지난 3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주사인 ㈜한화 지분의 절반을 세 아들에게 증여하면서 승계 작업이 마무리됐다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김 회장의 지분 증여로 김 부회장의 지분(9.77%)은 두 동생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5.38%),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5.38%)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아졌습니다.
반면, 정 회장은 완전한 승계를 위해선 지분 확보라는 산을 넘어야 합니다. 정 회장의 HD현대 지분율은 현재 6.12%로 낮은 수준인데, 부친인 정 이사장의 지분(26.6%)을 원활하게 승계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선대 회장들이 고령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빠르게 세대교체가 이뤄지면 조직을 다질 수 있는 여력이 커지기에 승진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경향이 있다”며 “또한 승진 시기와 관련해서 글로벌 사업 과정에서의 회장 직함 같은 외부 시선 등 복합적 요인도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부회장의 승계는 이제 골격은 거의 다 잡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며 “섣불리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김 부회장이 1년 내지 2년 사이 회장으로 승진 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