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좋은 지도교수 만나면 행복해져"

네이처 세계 박사과정 만족도 조사, 브라질·호주·이탈리아 앞서
지도교수와의 '1시간 면담'이 삶의 질 좌우

입력 : 2025-10-24 오전 10:02:46
'2025 글로벌 박사과정 만족도 조사’ 보고서 표지.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좋은 박사는 좋은 스승에서 나온다.” 박사과정생의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좋은 지도교수’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세계적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가 107개국 3785명의 박사과정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 글로벌 박사과정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지도교수와 일주일에 1시간 이상 만나는 학생들의 만족도는 82%로, 한 시간 미만으로 만나는 학생들(69%)보다 뚜렷이 높았습니다. 
 
네이처는 10월22일 사설에서 “연구비나 장학금, 근무시간, 팀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의 토대는 지도교수의 인간적 관심과 지도역량”이라며 “지도교수가 학생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때 박사과정의 만족도와 연구성과가 함께 높아진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도는 과학이다”, 멘토링의 상호이익 구조
 
네이처는 미국 국립과학원(NAS)의 2019년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학생에게 시간을 투자한 교수일수록 논문 생산성, 협업 능력, 후속 연구비 확보율이 모두 높았다고 밝혔습니다. ‘좋은 멘토링은 일방적 봉사가 아니라 상호이익의 구조’라는 것입니다. 
 
네이처의 조사결과는 적극적인 지도를 하는 교수들은 학생에게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신진 연구 분야를 접하며 “지적 재충전(intellectual recharge)”을 경험한다는 2022년 임상심리학회 리뷰 결과와 일치합니다. 
 
“시간이 부족한 지도교수라도 짧은 대화라도 자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며 “작은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실패 경험을 연구적 성장의 기회로 전환시키는 것이 지도교수의 역할”이라고 사설은 강조합니다. 
 
“1시간의 대화가 인생을 바꾼다”
 
이번 조사에서 지도교수와의 대면 시간이 주 1시간 이상인 학생은 전반적 행복지수가 높았고, 연구 몰입도와 논문 생산성도 유의미하게 높았습니다. 네이처 사설은 “지도교수의 지도 시간을 ‘책임시간(accountability)’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강하게 촉구합니다. 영국(61%)과 독일(60%)은 지도교수와의 대면 시간이 주 1시간 미만인 비율이 가장 높았고, 인도(60%)는 주 1시간 이상 면담이 이뤄지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네이처 조사에서 가장 높은 만족도를 보인 나라는 브라질(83%)이었고, 호주(82%), 이탈리아(82%)가 뒤를 이었습니다. 브라질 학생들은 “지도교수가 협력자처럼 느껴진다”는 응답이 많았고, 절반 가까이가 “지도교수와의 관계가 매우 만족스럽다”고 답했습니다.
 
브라질 아마존 연방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재료과학자 카밀라 핀투(Camila Pinto)는 “박사과정 중 부모님을 잃고 번아웃과 우울증을 겪었지만, 지도교수의 개인적 지지와 연구 공동체의 연대가 나를 지탱했다”고 말했습니다. 호주 멜버른 모나시대학의 박사과정생 에디 애튼버러(Eddie Attenborough)는 “야외 활동과 균형 잡힌 삶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며 “행복한 일상은 실험실 만족으로 이어진다”고 네이처는 소개했습니다.
 
반면 중국은 만족도 60%로 가장 낮았습니다. 응답자들은 장시간 근무(주 80시간 이상)와 치열한 경쟁, 낮은 장학금(연 4만2000위안, 약 미화 1만1000달러)을 주요 불만으로 꼽았습니다. 총 107개국에서 응답이 있었지만, 100명 이상 응답한 8개 주요국(호주, 브라질, 중국, 독일, 인도, 이탈리아, 영국, 미국)만이 ‘국가 단위 비교 분석’에 포함됐습니다. 한국은 응답자 수가 그보다 적어 개별 통계로 다뤄지지 않고 ‘기타 국가(Other countries)’ 그룹으로 분류됐습니다. 서울대는 2024년부터 ‘대학원생-지도교수 면담 의무화’를 시행해 학기당 최소 1회 이상의 상담 기록을 남기도록 했고, 카이스트는 ‘지도교수 교육 프로그램’을 신임교수 대상 필수 과정으로 전환했습니다. 이런 변화 노력이 있지만 우리나라 대학원은 ‘지도교수 1인 중심 연구실 구조’가 일반적이며, 학생의 연구·진로·정서적 지원이 모두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정기적 면담 의무, 멘토링 교육, 피드백 평가제 등은 형식적으로 운영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괴롭힘·차별 여전…“지도교수에 의한 괴롭힘 4명 중 1명꼴”
 
네이처의 글로벌 박사과정 만족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43%가 “차별이나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그중 40%는 가해자가 지도교수였습니다. 괴롭힘 피해자 중 28%만이 ‘보복 두려움 없이 신고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지난 2023년 우리나라 교육부와 과기정통부가 공동으로 발표한 ‘연구실 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 대학원생의 38.6%가 언어폭력이나 인격모독을 경험했다는 수치와 거의 비슷한 수준입니다. 네이처 사설은 이런 상황에 대해 “지도교수의 권력 남용은 여전히 연구 생태계의 어두운 그림자”라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41%가 ‘논문 게재 압박’을 가장 큰 스트레스로 꼽았고, 절반은 “진로 상담이 부족하다”고 답했습니다. 네이처 사설은 “좋은 지도는 단지 논문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인생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좋은 지도에는 학문적 지식과 더불어 호기심, 공감 능력, 신뢰성이 필요하다. 이것은 훌륭한 연구를 만드는 자질이기도 하다. 차세대 과학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투자다.” 우리의 대학원에서도 꼭 되새겨야 들어야 할 네이처의 외침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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