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최근 대법원은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에 관해 추심명령이 있는 경우 채무자가 피압류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그간 대법원은 25년 동안 추심명령이 있는 경우엔 채무자가 피압류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는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종전 판례를 변경한 겁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9월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번 사건의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주위적으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예비적으로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심은 2021년 7월경 주위적 청구 중 일부를 추심명령에 따른 당사자적격 상실을 이유로 각하하고, 예비적 청구 중 일부를 인용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원심판결이 선고된 후 원고의 채권자가 위 판결원리금에 대해 추심명령을 받고, 성남세무서장이 원고의 세금체납액의 징수를 위해 같은 채권을 압류했습니다. 원고는 상고하면서 위 판결원리금에 대해 새로운 추심명령 등이 있으므로 원고가 당사자적격을 상실했다고 주장한 겁니다.
대법원은 채무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피압류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를 제기하는 것은 추심명령에 위반되지 않고, 추심명령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채무자가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 볼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압류명령은 제3채무자의 채무자에 대한 지급이 금지되고 채무자의 채권의 처분과 영수가 금지될 뿐이고, 추심명령은 추심채권자가 대위 절차 없이 압류채권을 추심할 권능만 부여할 뿐이므로 채무자의 이행의 소 제기가 이에 위반되지 않는 점 △압류채권자가 추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 규정에 채무자의 당사자적격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는 점 △채무자는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더라도 여전히 피압류채권을 보유하므로 시효중단 또는 제소 기간 준수를 위한 소 제기나, 향후 추심채권자의 추심권 소멸을 대비한 집행권원 확보 등의 이익이 있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채무자가 피압류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보더라도 추심채권자에게 부당한 결과가 생긴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추심채권자는 채무자가 제기한 이행소송에 공동소송참가를 하거나 제3채무자의 진술 의무 제도를 활용해 채무자의 이행의 소 제기를 확인할 수 있고, 채무자가 승소 확정판결을 받더라도 실체 추심은 금지되므로 추심채권자에게 영향이 없다는 겁니다.
채무자가 피압류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보더라도 제3채무자에게 불리하지 않고 오히려 응소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채무자가 이행소송의 승소 확정판결을 받아 집행을 시도해도 제3채무자는 이를 저지할 수 있고 공탁을 통해 지급 의무를 면할 수도 있어 이중 지급의 위험이 없다고 봤습니다. 채무자의 당사자적격이 유지되지 않으면 그동안의 소송이 무위로 돌아가고 추심채권자의 새로운 소송에 다시 응소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될 염려도 있다고 봤습니다.
추심명령에 따라 채무자가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 보면 분쟁의 일회적 해결과 소송경제에 반하고 추심채권자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판례 변경의 이유가 됐습니다. 채무자가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 보면 소송이 장기간 진행되던 중 추심명령이 발령돼도 각하하는 것이 원칙인데 환송 후 원심에서 당사자적격이 회복됐다가 다시 재상고심에서 추심명령이 있는 경우 위 절차가 반복될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대법원은 이와 같은 이유로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에 관해 추심명령이 있으면 제3채무자에 대한 이행의 소는 추심채권자만 제기할 수 있고 채무자는 피압류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 본 종전 판례와 국세징수법에 의한 체납처분으로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을 압류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본 종전 판례를 모두 변경했습니다.
이에 대해 대법관 1명은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종전 판례는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하면서도 법적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해석론을 제시해왔는데, 소송경제라는 측면에서 다소 난점이 있다고 해서 오랜 기간 재판 실무나 다수 학설이 별다른 의문 없이 받아들여온 판례 법리를 무위로 돌려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이 있는지 의문이고, 종전 판례 법리에 어떠한 흠이나 잘못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채무자가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유지한다고 보면 추심채권자의 추심권능에 중대한 제약이 초래돼 민사집행법의 취지에 반하는 점 △추심명령이 있는 경우 채무자가 피압류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 보더라도 채무자 또는 제3채무자에게 부당하지 않고, 승계 참가 등을 통해 소송경제를 도모할 수 있는 점 △종전 판례를 변경했을 때 중복제소금지나 기판력 등 광범위한 판례 변경이 이뤄져야 하므로 추심명령 관련 실무에 초래될 혼란을 가늠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판례 변경의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해당 사건은 이미 한 차례 상고심에서 당사자적격 상실 범위를 다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미 파기됐었고, 환송 후 원심이 소 일부를 각하하고 나머지에 대해 판결했는데, 피고가 원심판결 후 새로 발령된 추심명령을 이유로 원고의 당사자적격이 상실됐다고 재상고했습니다. 종전 판례에 따르면 다시 파기환송 해야 하는데 이러한 상황이 반복될 우려도 있었습니다. 새로운 판례에 따르면 무용한 절차의 반복을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판례 변경이 지금까지 확립된 실무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므로 실무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압류채권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소송 고지 제도나 제3채무자의 진술 의무 제도 등을 활용하고, 장기적으로는 관련 제도의 정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