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최근 대법원은 민사소송 사무를 위임받아 수행하던 변호사가 개인정보가 포함된 계약서를 서증으로 제출한 행위에 대해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면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와 다르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지난 7월 대법원은 소송 중 재판부의 석명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개인정보가 포함된 자료를 동의 없이 제출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과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개인정보가 담긴 자료를 수사기관에 제출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 등에서 피고인들의 행위가 모두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의 넓은 적용 범위로 인해 소송상 법원에 제출한 자료나 범죄의 수사를 요청하기 위해 수사기관에 제출한 자료에 개인정보가 포함된 경우에도 개인정보 주체가 민·형사상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있었고,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기도 했는데 잇따른 대법원 판결로 어느 정도는 정리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변호사인 피고는 종전 소송에서 A씨로부터 소송 사무를 위임받아 수행했습니다. 피고는 제3자로부터 원고의 개인정보가 담긴 계약서를 전달받았고, 이 계약서를 준비 서면에 첨부해 종전 소송에 서증으로 제출했습니다. 이에 원고는 피고가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를 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겁니다.
1심은 피고가 원고의 개인정보가 기재된 계약서 사진을 업무상 취득해 보관하던 자로서 개인정보보호법 제59조가 정한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했던 사람’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따라서 피고가 계약서 사진을 원고의 의사에 반해 제3자에 대한 민사소송에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피고가 배상해야 한다고 보고, 3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2심도 피고가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했던 사람’에 해당하고, 피고의 행위가 ‘원고의 개인정보를 누설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가 법원에 원고의 개인정보가 포함된 이 사건 계약서를 제출한 행위는 개인정보 보호법 제59조 제2호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로서 위법성도 인정된다고 보고 피고의 원고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긍정한 겁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소송상 필요한 주장의 증명을 위해 개인정보가 포함된 소송 서류나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는 경우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때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는 △개인정보 제출자가 개인정보를 수집·보유 및 제출하게 된 경위와 목적 △개인정보를 제출한 상대방 △제출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 제출인지 여부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 가능성 및 조치 여부와 내용 △제출한 개인정보의 내용, 성질(민감정보 여부 등) 및 양 △침해되는 정보 주체의 법익 내용과 성질 및 침해의 정도 △개인정보를 제출할 다른 수단·방식의 존재 여부 및 다른 수단·방식을 취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제출하게 된 불가피한 사정의 유무 등 개별적인 사안에서 나타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피고가 종전 소송에서 계약서 사진을 서증으로 제출한 행위는 소송행위의 일환으로 평가되는 점 △피고가 원고의 상대방으로서 형사절차에 관여하는 등 계약서가 진정하게 성립됐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었던 점 △피고가 계약서 사진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다른 법익을 침해하지 않은 점 △개인정보의 내용이 계약 당사자의 특정에 필요한 정보의 범위를 넘지 않고 민감정보 등은 포함되지 않은 점 △소송 기록의 열람·복사 절차에 개인정보 보호 관련 규정이 적용되므로 이 사건 계약서에 기재된 개인정보가 종전 소송과 무관한 제3자에게 제공될 위험성도 크지 않은 점 등을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앞서 살펴본 법리에 따라 판단하면 피고의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법원에 따르면 소송 중 개인정보가 포함된 자료를 법원에 제출하는 행위나 고소·고발 또는 수사절차에서 범죄혐의의 소명이나 방어권의 행사를 위해 개인정보가 포함된 증거자료를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행위도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하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자료를 제출하는 행위가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정이 있다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거나 정보 주체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정보가 포함된 자료를 법원이나 수사기관에 제출할 때 개인정보보호법의 취지와 대법원의 법리에 따라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미리 판단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