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지난 8월 정부가 국내 석유화학업계에 구조조정 개편안 제출을 요청한 가운데,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업계 1호로 자율적 사업 재편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 역시 이에 맞춰 구조조정 지원 방안을 내놓으며 추진력 확보에 나섰습니다. 다만 다른 석유화학 단지들은 여전히 논의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으로, 실질적인 재편 성과를 내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충남 대산에 위치한 롯데케미칼 공장. (사진=뉴시스)
27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충남 대산 석유화학단지 내 석유화학 설비 통합을 골자로 한 사업 재편안에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현재 HD현대케미칼의 지분은 HD현대오일뱅크가 60%, 롯데케미칼이 40%를 보유하고 있으나, 양사는 지분을 유사한 수준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조만간 정부에 사업 재편안을 제출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양사는 롯데케미칼이 대산 공장의 나프타분해설비(NCC) 등을 현물로 출자해 HD현대케미칼로 이전하고, HD현대케미칼은 현금출자를 통해 합작사를 세운 뒤 지분을 재조정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통합하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 역시 12월 중 대산 석유화학단지 구조조정 방안을 공식 발표할 가능성이 크며, 공정거래법 및 세제 관련 등 문제 해결을 위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원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다른 주요 석유화학단지의 구조조정 논의는 다소 더딘 상황입니다. 울산의 경우 대한유화·SK지오센트릭·에쓰오일 등 3사가 외부 컨설팅을 통해 재편 전략을 협의 중이지만, 아직 NCC 감축 규모조차 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SK지오센트릭의 경우 이미 SK에너지로부터 NCC를 공급받으며 수직계열화가 이미 완성된 데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에 대한유화와의 NCC 통합 논의가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에쓰오일이 9조2580억원을 투입한 ‘샤힌 프로젝트’가 내년 하반기 상업 가동에 들어가면, 해당 단지도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될지 여부 등 변수가 남아 있어 구체적인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습니다.
충남 대산에 위치한 HD현대케미칼 공장. (사진=HD현대)
여수에서는 LG화학이 GS칼텍스에 NCC 매각과 합작사 설립을 통한 통합 운영을 제안했지만, 아직 뚜렷한 진전은 없는 상황입니다. GS칼텍스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약 2조7000억원을 투입해 올레핀 생산공정(MFC)을 구축한 바 있어, 준공 3년도 채 되지 않은 시설을 조정하거나 통합하는 결정이 쉽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LG화학이 여전히 다운스트림 제품 생산을 유지하고 있어, NCC 가동만 줄이거나 중단하는 방안 역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특히 GS칼텍스는 미국 셰브론이 지분 50%를 보유한 합작사로, 신규 투자나 구조조정과 같은 주요 의사결정에 시간이 소요되는 점도 협상 진전을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또한 롯데케미칼과 여천NCC의 통합 논의 역시 공동 주주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 간 이견으로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 8월에는 여천NCC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면서, 대주주 간 책임 분담과 추가 출자 방안을 두고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 간의 갈등이 표면화된 바 있습니다. 더불어 롯데케미칼이 여천NCC와 통합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롯데케미칼과 여천NCC뿐 아니라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까지 총 4개사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하고 조율 과정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한 석화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의 합의안은 석화업계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다만 타 산단의 경우는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으로, 실질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 완화와 세제 지원 등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