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마Ⅱ(은퇴한 사람들의 해외 마을 만들기)는 단순한 은퇴자 주거 모델이 아닌, 초고령 사회와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와 개인이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새로운 국가 전략입니다. 해외 거점에 형성될 은퇴자 커뮤니티는 항공·관광·헬스케어·부동산 산업에 걸쳐 신수요를 만들고, 동시에 한국 기업과 스타트업의 교두보가 됩니다. 거점도시는 결국 한국형 개발협력(ODA), 글로벌 공급망 전략, 문화 교류의 실제 인프라가 됩니다. 은사마Ⅱ의 1차 거점은 라오스 비엔티안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두 도시 거주자들의 기고를 통해 이 전략의 향후 전개 방향을 조망합니다. 본 기획은 한국 ODA 자금이 라오스 경제발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 흐름이 한국의 새로운 국가 전략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보건·교육 분야 ODA…인적자원 투자로 지속가능성 높이다
라오스는 메콩강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젊은 국가이지만 여전히 최빈국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는 약 165억달러, 인구는 760만명에 불과하다. 산업 기반과 의료, 교육 수준이 열악한 여건 속에서 ODA는 라오스 경제의 핵심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ODA가 단순한 시설 지원을 넘어 인적자원 양성과 병행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은 라오스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변화다.
한국은 라오스를 중점협력국으로 지정하며 보건·교육 분야에 집중적인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에는 도로, 병원, 상수도 등 인프라 지원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운영과 인력, 제도적 기반을 함께 구축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라오스 정부가 2020년 발표한 'ODA 전략 2030'에서 내세운 네 가지 원칙인 △ODA와 국가개발계획 연계 △유상·무상의 균형 △관리체계 강화 △국제 협력 확대와 맞닿아 있다.
의료 인프라에서 의료 '체계'로
라오스 비엔티엔 103병원 내부. 의료시설이 열악함을 알 수 있다. (사진=LaoStudy)
라오스의 보건의료 환경은 열악하다. 수도 비엔티안조차 국제병원을 제외하면 선진 의료시설이 거의 없고, 지방 공공병원은 장비 부족과 전문 인력의 부재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이에 한국은 유상차관을 통해 국립의과대학병원과 공안부 현대식병원 등 인프라 설립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건물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기 어렵다.
필자는 8월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103 국군병원에서 응급 맹장수술을 받았다. 이 병원은 중국의 원조로 최신 CT·초음파 및 수술 장비가 도입돼 있었으며 주로 해외, 특히 중국에서 교육을 받은 의사들이 배치돼 있어 수술 과정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외형적으로는 병원 현대화가 상당 부분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의료서비스와 간호 체계는 여전히 취약했다. 수납 프로세스가 응급실, 검사, 약제, 수술, 입원 단계마다 따로 구성돼 있어 단계마다 결제를 반복해야 했고, 깜빡하고 영수증을 챙기지 못하면 재발급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병원식과 침대 시트가 제공되지 않아 환자 가족들은 집에서 밥솥과 이불을 가져오고 있었다. 기본적인 소독과 드레싱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동형 링거거치대도 부족했다. 이는 인력과 운영이라는 소프트웨어가 갖춰지지 않으면 하드웨어 투자가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보건복지부는 무상원조를 통해 의료인력 양성·행정체계 개선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건강보험 심사청구 체계 구축, 의료기기 관리 및 운영 시스템 개선, 성·재생산·모자보건 서비스 품질 제고, 병원 운영관리와 의료인력 역량 강화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국립의대병원 건립사업과 KOICA의 병원 운영관리 역량 강화사업이 병행되면서 시설 구축과 운영체계 개선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라오스 정부가 강조한 "유상차관과 무상원조의 균형"이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 분야, 인적역량이 곧 성장동력
라오스 국립대학교 전경. (사진=라오티엔 타임스)
젊은 인구가 많은 라오스에서 교육은 발전의 핵심 축이자 미래 성장 기반이다. KOICA는 라오스 교육부 및 국립대학교와 협력해 디지털혁신중소기업학과를 신설하고, 교원 역량 강화 프로그램과 직업훈련 체계 고도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라오스 산업 구조와 노동시장에 맞춘 인재 양성 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다.
또한 교육부·과기정통부가 함께 추진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구축 및 콘텐츠 제작 기반 강화사업은 라오스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온라인 학습 시스템, 교사 대상 ICT 교육, 디지털 교재 개발 등이 병행되며 교육과 기술을 결합한 지식 기반 성장 모델이 점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아직도 부족함을 호소한다. 라오스의 대학 진학률과 직업훈련 참여율은 높지 않고, 심지어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가 없다"는 청년층의 어려움은 산업 수요와 고등교육 사이의 구조적 단절을 보여준다. 고등교육을 받았더라도 적절한 전문직 일자리가 없어 많은 젊은이들이 택시기사로 일하거나 학교 행정·강의보조에 머물기도 한다.
반대로 기업들은 "쓸 만한 인력을 구하기가 어렵다"며 채용과 유지의 어려움을 지적한다. 고급 인력을 길러내도 임금 격차로 인해 인재가 이직하거나 해외로 이탈하는 현상도 지속된다. 이러한 미스매치는 교육과 일자리 창출이 균형 있게 발전하지 못하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인적역량 강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교육과 직업훈련이 단순한 '학습' 단계에 그치지 않고 산업 구조와 실제로 연결될 때 라오스는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한국의 ODA가 이 연결고리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빚보다 오래간다
라오스 비엔티엔 103병원 전경. (사진=LaoStudy)
보건과 교육에 대한 투자는 단기적으로 성과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든 개발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다. 의료 인력이 성장할수록 병원 운영의 안정성과 환자의 건강이 담보되고, 교원의 역량이 강화될수록 산업에 필요한 기술 인재가 생겨난다. 결국 인적자본은 도로·병원·상수도 같은 인프라를 실제로 작동시키는 엔진이다. 라오스가 진정한 자립형 경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외부 자금으로 시설을 짓는 것을 넘어 내부에서 그 시설을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시설에서 사람으로, 지원에서 자립으로
라오스의 발전은 건물이나 장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인프라를 운용하고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사람과 제도에 달려 있다. 한국의 ODA는 금융과 인프라 지원을 넘어 의료·교육을 중심으로 한 인적자본 강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유상차관이 라오스 경제 기반을 확충한다면 무상원조는 그 기반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라오스 발전의 핵심은 '시설에서 사람으로, 지원에서 자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한국의 ODA가 이 변화의 중심에서 라오스와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로서 역할을 수행할 때, 라오스가 지향하는 '육상연결국'으로의 도약은 더욱 현실적인 목표가 된다. 이는 지속 가능하고 책임 있는 협력의 형태이자 양국 모두에게 장기적 가치를 남기는 길이기도 하다.
이주명 IBK기업은행 과장·라오스 지역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