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콘'은 사라지고 '냇콘'이 지배하는 트럼프의 미국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MAGA운동 이념 기반 형성

입력 : 2025-12-02 오전 6:00:00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JD밴스 부통령,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DNI) 국장,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트럼프 1기' 정부 백악관 수석고문 스티브 배넌과 무역대표부 대표 로버트 라이트하우저, 정보기술 기업 팔란티어 창업자이자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 피터 틸, 케빈 로버츠 헤리티지 재단 회장, 론 디센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터닝포인트 USA' 공동설립자 고 찰리 커크, 에드먼드 버크 재단과 그 설립자인 유대계 정치철학자 요람 하조니,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 
 
이들 대부분은 미국의 에드먼드 버크 재단이 조 바이든 행정부 시기인 2019년부터 개최해온 'National Conservatism Conference'(국가 보수주의 콘퍼런스)의 주요 연사거나 이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인물들이다.
 
지난해 9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The growing peril of national conservatism"(국가 보수주의의 위험 증가) 기사에서 "1980년대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시장과 자유를 중심으로 새로운 보수주의를 구축했는데, 오늘날 도널드 트럼프, 빅토르 오르반 등 다양한 서구 정치인들이 그 정통성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국가적 주권을 개인보다 우선시하는 국가주의적이고 '반(反) 깨어 있는' 보수주의를 구축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national conservatism(이하 냇콘)이 단지 정책 방향의 변화가 아니라 '현대 사회를 지탱해온 제도들'을 해체·재구성하려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핵심 기반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연방정부 재가동을 위한 임시 예산안 서명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자유주의는 시장 절대주의" 비판…생산경제·보호무역주의 전환 주장
 
1980년대 이래 미국 공화당의 보수주의는 신자유주의였다. 자유시장·규제 완화·무역 자유화 기조 아래 작은 정부, 정부 개입 최소화에 집중하면서 금융을 산업의 중심에 뒀다. 
 
'냇콘'은 신자유주의를 시장만능주의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시장 절대주의에 대한 반성'을 주장하면서, 자유무역·금융자본이 미국 공동체를 붕괴시켰다는 인식으로 "시장 자유가 아니라 국가의 번영"이 우선이라고 했다. 보호무역주의로의 전환을 주장한 것이다. 더불어 이민, 젠더, 'Woke'(깨어 있는) 문화에 반발하면서 정체성과 문화 전쟁도 강조했는데, 고 찰리 커크가 이를 이끌었다. 특히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중산층 남성·여성의 안정된 일자리를 강조했는데, 이는 냇콘 특유의 규범적 목표라 할 수 있다. 경제정책을 단순 성장이 아니라 공동체 보전과 문화적 안정과 연결시킨 것으로,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러스트 벨트'에 설득력이 큰 내용이다. 
 
또 미국은 더는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반(反)글로벌리즘·반(反)국제주의를 취했고, 국가와 종교의 재정립도 강조했다. 정교분리의 세속주의가 아닌 "기독교적 가치관에 근거한 공화국"을 내세우면서 미국 건국 정신의 '도덕적 토대'를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를 절대 지지하는 '복음주의' 교회 세력의 주장이다. 종합하면, 트럼프와 동의어라 할 수 있는 MAGA 운동의 이념 기반이 바로 냇콘인 것이다. 
 
이들의 무역·산업정책은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가 올해 9월 워싱턴 냇콘 콘퍼런스에서 한 연설에 집약돼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미국 경제가 금융·투기 중심 경제가 되면서 '빚쟁이 국가'가 됐고, 미국 제조업이 약화돼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산업까지 해외에 의존하면서 국가안보까지 위험해졌으니, 이제 이를 탈피해 제조업·실물 생산·전략 산업·고용·지역 공동체를 중심에 두는 '생산경제(Production Economy)'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조업 중흥 즉, 반도체·철강·자동차·배터리 등 전략산업을 미국 영토 안에서 생산해서 공장을 재건(Built in America)하자는 것이었다.
 
"(미국) 헌법은 새 정부가 '외국과의 무역을 규제'할 권한을 명시적으로 규정했다"며 "자유로운 국제 무역은 기본 원칙이 아니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다른 나라들이 우리 시장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통해 자동적으로 이익을 얻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 대목은, 트럼프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벌인 '관세 전쟁'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2025년 9월 냇콘 컨퍼런스 소개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에드먼트 버크 재단)
 
가디언 "미국 내 민족주의 극우파와 트럼프 행정부 사이에 어떤 차이 있는지 의문"
 
올해 9월 냇콘 콘퍼런스를 보고 영국 '가디언'은 "미국 내 민족주의 극우파와 트럼프 행정부 및 공화당 구성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AP통신>은 밴스 부통령이 2021년 상원의원 선거운동 당시, 냇콘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보수층에게 "이 나라의 대학들을 정직하고 공격적으로 공격하라"고 촉구했다고 상기한 뒤, 4년 후 올해 트럼프 행정부는 바로 그 목표를 실행에 옮겼다고 지적했다. 하버드 등 대학에 대한 지원금을 삭감함으로써 대학들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냇콘은 아들 부시 행정부 시절(2001~2009년)에 세계를 강타한 네오콘(Neocon)에도 극히 비판적이다.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악의 축'이라 규정한 네오콘은 "전 세계 민주주의 확산이 미국의 사명"이라며, 이라크를 침공했다. 적극적인 개입주의로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추구했고, "민주주의 확산"을 국익과 동일시하면서 전쟁을 불사한 현대판 십자군들이었다. 이라크 침공의 명분은 대량살상무기였으나 끝내 물증은 찾지 못했고, 계속된 전쟁과 선제공격 위협은 미국 내에서는 물론 동맹국들도 손을 내젓게 만들었다. 결국 아들 부시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네오콘은 몰락했다. 
 
냇콘은 이런 네오콘을 '글로벌리즘의 하수인'이며 '끝없는 전쟁'으로 미국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특히 중국의 부상에 눈감았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중국과의 전략 경쟁은 중시하지만 해외 분쟁 개입은 반대한다. 네오콘의 시각에서 보면 냇콘은 동맹을 파괴하는 대신 중국과 러시아가 득을 보게 만들어 미국의 역할을 약화하고 국제질서를 망가뜨리는 위험한 포퓰리스트들이다. 
 
아들 부시와 그의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는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겠다고 공개할 정도로 트럼프를 싫어했다. 여기에는 트럼프의 고약한 개인적 성품 문제와 함께 이 같은 정책적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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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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