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이종용·이재희 기자) 인도네시아에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복수의 계열사를 진출시킨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현지 금융당국(금융감독청, OJK)의 지주사 전환 요구로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계 금융사들이 지난 수년간 현지 시장에서 외형 확장에 나섰다면 이제는 사업구조 개편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현지에서 복수의 계열사를 운영하는 한국계 금융사는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가 대표적입니다.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여러 라이선스를 통해 종합 금융 생태계를 만든다는 전략이 본궤도 진입을 앞두고 있는데요. 문제는 현지 당국이 요구하는 규제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은 한국계 금융사들에게 1년재 중간지주사를 설립하라는 방침을 전달했다. 사진은 자카르나 중심부에 위치한 OJK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OJK "1년 내 지주 체제 확립"
OJK는 KB금융과 신한금융에 1년 내 지주사를 설립하라고 요구한 상태입니다. 현지 당국이 지주사 전환을 요구하는 근거는 지난 2020년 제정된 '금융그룹 통합 감독' 규정에 근거합니다. 이 규정은 여러 금융사를 보유한 기업집단은 자회사들을 하나의 지배 체계 아래 두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헤당 규정에 따르면 △자산 100조루피아(한화 기준 약 8조8500억원) 이상이면서 2개 이상의 금융업을 영위하는 경우 △자산 20조루피아(1조7700억원)~100조루피아(8조8500억원)이며 3개 이상의 금융업을 영위하는 경우 금융복합그룹으로 지정됩니다. 이 밖에 OJK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별도 기준으로 금융복합그룹으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2025 아세안-한국 금융협력포럼'에서 인도네시아 금융기관 관계자들과 취재진들이 금융감독청(OJK)의 규제 방향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OJK의 이런 통제는 △금융그룹 전체의 지배구조 일원화 △리스크 관리·내부통제 체계 통합 △감독 사각지대 해소 △자본 건전성 및 연결 리스크 모니터링 강화 등을 명분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근무하는 한 주재원은 "OJK측에서는 여러 라이선스가 흩어져 있는 구조는 감독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며 "위기 발생 시 책임 소재 파악이 어렵다는 명분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습니다.
신한금융은 신한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을 중심에 두는 지주사 전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관계자는 "신한금융에서는 OJK 요구에 맞춰 은행이 그룹 전체의 운영을 총괄하는 형태로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현지 당국이 요구하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신한금융은 인도네시아에서 신한인도네시아은행, 신한인도파이낸스(카드), 증권사를 운영 중입니다.
자카르타 업무 중심지 SCBD(Sudirman Central Business District)에 현지 금융사와 한국계·외국계 금융사들이 포진해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KB금융은 은행·증권·보험을 아우르는 '순수 금융지주회사'를 별도 설립하겠다는 방침을 검토했다가 현재 인도네시아 당국과 조율 중입니다. KB금융에서는 인도네시아 상업은행인 KB뱅크(옛 부코핀 은행)와 KB증권 법인이 영업을 하고 있으며, KB손해보험과 KB국민카드, KB자산운용 등도 진출해 있습니다.
OJK가 은행 중심 지주화를 권고하는 이유에 대해선 감독의 용이성을 확보하면서 통제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이 가장 높은 수준의 감독 규율을 이미 받고 있으며, 감독 인프라(데이터, 보고 체계)가 가장 정교하게 마련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당국은 금융그룹의 '컨트롤타워'를 은행에 두려는 것입니다. KB금융 관계자는 "은행을 지주로 삼아 그룹 전체 리스크를 통합 관리하라는 것"이라며 "OJK가 어떤 구조를 요구하느냐에 맞추기 위해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지주 전환 비용·준비 기간 부담"
지주사 전환은 단순히 조직 재편이 아닙니다. 인도네시아 계열사 지분을 현지 중간 지주사가 사들여야 하는 등 지분 정리가 필요하고, 이에 따라 자본 재배치, 조직·IT 통합 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KB뱅크의 경우 최근 흑자 전환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만, 아직 남은 부실채권이 많아 경영 안정화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주사 전환까지 병행하기까지는 부담이 적지 않습니다.
자카르타 중심부의 가톳 수부로토에서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의 간판이 보인다. (사진=뉴스토마토)
지주사 체제 전환은 시작일 뿐, 이후에는 보다 강화된 연결 감독이 뒤따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OJK가 요구하는 그룹 통합 리스크 관리 체계에선 계열사 간 자본적정성 규율, 내부통제 시스템 일원화, 그룹 단위의 자금세탁방지(AML)·소비자 보호 기준 강화 등을 담고 있습니다. 지주사 전환이 그룹 전체에 대한 감독 일원화를 위한 사전 작업이기 때문에 지주사 전환 이후 한국계 금융사들은 더 강한 규제를 마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내 금융사들이 단순히 외형 확장보다 질적 성장은 물론 지배구조 정비에 신경써야 하는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한 주재원은 "인도네시아가 외국계 금융사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은 데다 인력이나 자금 유출에 대한 우려로 규제가 강한 국가에 속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주재원은 "현지 당국이 디지털 금융 전환이나 가상자산 활용 등에 열려 있는 자세 같지만, 투명성·책임성·소비자 보호 원칙을 명분으로 외국계가 주도권을 가지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전했습니다.
수도 자카르타 중심부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ank Indonesia)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