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와 현지 방산 기업들과 협력해 미 남동부 지역에 전략 광물 제련소를 건립하는 등 이른바 ‘광물 동맹’이 형성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이 같은 구상을 두고 고려아연의 대주주인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은 전략 광물에 대한 주권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날 오전 이사회를 열어 미 제련소 투자 여부를 결정했습니다. 해당 제련소는 고려아연과 미국 측이 합작법인(JV)을 설립해 추진하는 방식으로, 총 투자금은 약 10조원 규모로 예상됩니다. 투자 재원은 합작법인이 현지에서 차입해 조달하며, 미 국방부와 상무부, 현지 방산 전략 기업들이 약 2~3조원 규모의 투자로 참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제련소는 안티모니와 게르마늄 등 고려아연이 국내에서 생산해온 전략 광물 상당수를 현지에서 생산·공급하는 핵심 거점으로 활용될 전망입니다.
현재 고려아연 울산 온산제련소는 아연과 더불어 안티모니, 게르마늄 등 전략 광물을 생산하고 있는데, 미 제련소 역시 이 같은 통합 공정을 적용해 첨단산업용 핵심 광물 공급 거점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투자는 지난 8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발표한 한미 전략 광물 협력 구상을 구체화한 조치로 해석됩니다. 당시 고려아연은 미 최대 방산 기업인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구매 및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며, 국내에 약 1400억원을 투입해 게르마늄 생산 공장을 신설하기로 한 바 있습니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 속에서 미국은 중국이 지난 10월 희토류 등 전략 광물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하자, 전략 광물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위해 고려아연과의 현지생산 협의에 적극 나선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에 업계 안팎에서는 고려아연 측이 영풍·MBK와의 경영권 분쟁 구도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특히 미 정부 측이 고려아연의 주주로 이름을 올릴 경우, 고려아연은 단순 민간기업을 넘어 미국의 경제·안보 자산 성격을 띠게 돼 향후 인수합병(M&A)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고려아연이 중요한 전략 광물을 생산하는 기업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주주들의 표심이 최 회장 측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제기됩니다.
영풍·MBK 측은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이번 안건은 최 회장의 개인적 경영권 방어를 위해 ‘아연 주권’을 포기하는 국익에 반하는 결정”이라며 “미 정부가 프로젝트가 아닌 고려아연 지분에 투자하는 것은 사업적 상식에 반하는 ‘경영권 방어용 백기사’를 확보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미 제련소가 온산제련소의 ‘쌍둥이 공장’이 될 경우, 국내 제련산업 공동화와 핵심기술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며 “국내 생산 물량이 미국 현지생산으로 대체되면 사실상 전략 광물 수출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