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공시톺아보기)사내근로복지기금, '기부'인데 왜 공시해야 할까

복지 목적 출연도 내부거래로 분류
50억원 넘으면 이사회 의결·공시 의무

입력 : 2025-12-19 오후 4:17:05
이 기사는 2025년 12월 19일 16:17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대기업들이 연말을 앞두고 잇달아 ‘특수관계인에 대한 증여’ 공시를 내놓고 있다. 최근 SK이노베이션(096770)CJ대한통운(000120)은 각각 사내근로복지기금에 대한 출연 사실을 공시했는데, 통상적인 복지 지출로 보일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 거래’로 분류돼 공시 의무가 발생한 것이다.
 

CJ대한통운 사내근로복지기금 관련 공시. (공시=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과 CJ대한통운은 최근 ‘특수관계인에 대한 증여’ 공시를 통해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자금을 출연한다고 밝혔다. 두 회사 모두 관련 법규로 공정거래법 제26조를 명시했다.
 
이들 공시의 핵심은 ‘사내근로복지기금’이 단순한 내부 계정이 아니라, 법적으로 회사와 구분되는 독립된 비영리법인이라는 점이다. 근로복지기본법에 따라 설립되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은 별도의 법인격을 가지며, 회사가 자금을 출연하더라도 회계상 비용 처리와는 별개로 ‘회사에서 특수관계인으로의 자금 이전’에 해당한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의문은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은 기부 행위에 불과한데, 굳이 공시까지 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일반적인 기부금 지출이라면 공정거래법상 내부거래 규제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사내근로복지기금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외부 기부가 아니라, 회사가 설립·출연하고 지속적으로 재원을 공급하는 특수한 비영리법인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공정거래법은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회사가 특수관계인을 상대로 대통령령이 정한 규모 이상의 거래를 할 경우 이를 ‘대규모 내부거래’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지급금·대여금 등 자금 제공 행위, 유가증권 제공, 자산 제공 등은 대표적인 공시 대상 거래로 명시돼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에 대한 금전 출연 역시 형식과 명칭이 ‘기부’일 뿐, 법적으로는 회사가 특수관계인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행위로 분류된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은 이러한 대규모 내부거래의 기준으로 △거래 금액이 50억원 이상이거나 △거래 금액이 회사 자산총액의 5%를 초과하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이 이 기준을 충족할 경우, 거래 목적이 복지든 기부든 관계없이 이사회 의결과 공시가 의무화된다.
 
특히 법은 대규모 내부거래를 진행하기에 앞서 이사회 의결을 거친 뒤 공시할 것을 명확히 요구하고 있다. 단순히 거래 사실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거래 목적·상대방·규모·조건 등 주요 내용을 함께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과 CJ대한통운 모두 공시를 통해 출연 금액과 일정, 이사회 의결일,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참석 여부까지 상세히 기재했다.
 
이는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이 ‘선의의 복지 지출’이라는 점과는 별개로, 대규모 자금이 회사 외부 법인으로 이전되는 거래인만큼 지배주주나 경영진의 자의적 판단을 차단하고 시장의 감시를 받도록 하려는 공정거래법의 취지를 반영한 것이다. 상장사의 경우 이러한 공시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통해 이뤄진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와 부당지원 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흐름 속에서,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 역시 ‘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외가 되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출연 금액이 자산 대비 크지 않더라도, 법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공시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점이 이번 사례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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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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