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압송되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미국이 지난 3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를 침공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그에 앞서 한 달 전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최상위 외교·안보 전략 지침서인 이번 NSS는 미국의 안보와 반영을 위해서는 "미국의 안보와 반영이 가능하려면 서반구(미주 대륙)에서 미국의 확실한 우위가 선결 조건"이라며 '서반구 패권 재건'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이어 "미국은 미주 대륙에서의 군사적 존재를 재검토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한 '네 가지 명백한 조치' 중 하나로 "필요시 치명적 무력 사용(the use of lethal force)을 포함하여 지난 수십 년간 실패한 법 집행 중심 전략을 대체할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베네수엘라 침공을 예고한 것이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하 전략연)은 지난 6일 낸 '트럼프 2기 국가안보전략서(NSS): 세계관 재편과 그 함의' 보고서(이하 보고서)에서 "2025년 NSS는 미국의 국익을 좁게 정의한다"고 짚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의 행태에 대한 적실한 진단이다. 보고서는 "미국을 활용해 부를 축적한 동맹국들은 이제 미국과 안보를 분담함으로써 동맹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 NSS의 기본적인 논리"라며 "더 이상 미국은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는 패권국의 역할을 포기하는 대신,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는 강대국들 가운데에서는 최고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NSS 최대의 화제어는 '트럼프판 먼로 독트린'(The Trump Corollary to the Monroe Doctrine)일 것이다. 보고서는 1823년에 나온 먼로 독트린은 "아메리카라는 신세계와 유럽이라는 구세계를 분리하는 세계관을 의미하는데, 이번 NSS가 강대국의 세력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강대국들 가운데에서는 최고"를 추구하고 있다는 대목과 종합해보면, 현재 국제 정세가 '19세기식 강대국 세력권 정치'라는 얘기다.
중국, '핵심 위협'에서 '관리 가능한 경쟁자'로 재규정
중국을 트럼프 1기의 2017년 NSS는 '현상 타파 세력'으로 정의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 시절인 2021년 NSS는 추격하는 도전(pacing challenge)이자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가진 유일한 경쟁자(only competitor)로 규정했다. 반면 이번 NSS는 중국을 핵심 안보 위협이라기보다는 '상호 경제 관계 재조정'이 가능한 경쟁자로 정의했다. 중국에 대한 기본 인식을 재규정했다는 점에서 이는 중대한 변화다. 보고서는 "중국은 (미국에게)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경쟁자라는 점에서 변함이 없다"면서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주의와 공정성에 기초하여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재조정(rebalancing economic relationship)하겠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미·중 관계는 '통제된 경쟁' 혹은 '경쟁적 공존'이 가능한 상태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군사 측면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강경 입장은 변함이 없다. NSS는 대만 문제와 관련해 제1도련선 중심 군사력 억제력 유지 등 '일방적인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보고서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중국의 코앞이라고 할 수 있는 남중국해와 대만 인근 해역에 대중 억제경계선을 설정한 것은 국력의 '전략적 선택과 집중'이라는 이번 NSS의 기조에서 다소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해석을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군부와의 이견이 노출된 것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더 구체적인 내용은 향후 발간될 국가방어전략서(NDS)에서 더욱 분명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러시아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미국의 직접적 적이나 위협이 아니라, 유럽이 실존적 위협으로 여기는 대상으로 규정했다. 보고서는 이를 " 대중 견제를 위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갈등보다는 관리하려는 의도"로 읽었다.
그렇다면 이번 NSS를 국제 정치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문명적 소멸'이라는 극단적 표현으로 무시당한 유럽에서는 '자강' 담론이 부상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유럽의 안보 자립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했다. 러시아와 접경하고 있는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조된 안보 위기 우려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핀란드 등 8개국은 정상급 회동 후 공동성명을 발표해, 러시아가 유로-대서양 지역에 대한 '가장 중대하고 직접적이며 장기적인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중·미 협력' 프레임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고, 러시아 전략가들은 미국이 사실상 모스크바의 독자적 유라시아 세력권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유럽의 "문명적 소멸" 표현 등을 통해 양국 정부 간 이념적 동질감을 확인했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그린란드 수도 누크. (사진=뉴시스)
"미국 유일 패권 중심의 단극 세계는 미국 스스로도 부인하는 과거"
그런데 NSS에서 나타난 정세 인식과 전략이 '매버릭' 트럼프 시대의 단기적 변화는 아닐까? 보고서는 차기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미국이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던 패권국 역할을 다시 자임하고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세계 안보를 떠받치고 있는 거인으로 묘사된 미국은 한동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의 상대적 국력 저하는 물론이고, 미국 국민들이 더 이상 세계 경찰로서 미국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또 세계를 권위주의와 자유주의 국가들로 나누던 과거의 구분이 재등장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봤다. 미국이 글로벌 공공재의 제공보다는 자국 이익 중심의 대외 정책을 펴는 상황에서는 과거와 같은 구분법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총론 차원에서 "이번 NSS에서 드러난 것은 미국 유일 패권 중심의 단극 세계는 미국 스스로도 부인하는 과거의 현실이 되었다는 점"이라며 단극 체제 이후의 미래 국제질서가 미중 중심의 이른바 G2 시대로 변화할지, 러시아 등 다른 국가들이 포함된 다극 세계로 변화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정리했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