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미국발 관세 압박과 정책 변동성 탓에 불확실성이 이어졌던 한미 조선 협력이 미 국무부의 공식 메시지를 기점으로 ‘본게임’에 들어섰습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민간 원자력과 핵추진잠수함(핵잠), 조선산업을 한미 미래 협력의 핵심축으로 명시하면서, 그간 협력을 가로막아온 정책적 안개가 걷히고 투자·기술·안보를 아우르는 협력 틀이 구체화됐다는 분석입니다. 방산에 국한됐던 협력이 원자력을 동력으로 하는 차세대 에너지 운송 선박과 북극항로 개척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는 조선산업의 구조적 전환을 예고하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3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왼쪽부터)과 회담을 진행했다. (사진=연합뉴스)
4일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3일(현지시각)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지난해 한미 정상 간 합의 사항이 올해 안에 구체적인 이정표에 따라 가시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루비오 장관의 주도적 역할을 요청했습니다.
미 국무부도 회담 직후 “양 장관이 민간 원자력, 핵추진잠수함, 조선, 미국 핵심 산업 재건을 위한 한국의 투자 확대에 대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히며, 이른바 ‘3대 협력 패키지’를 공식화했습니다. 이번 한미 외교장관회담은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인트 팩트시트’가 발표된 이후 처음 열린 공식 고위급 회담입니다.
업계는 이번 합의가 조선 협력을 산업 수출 차원을 넘어 안보·에너지·공급망 전략과 결합한 패키지로 공식화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민간 원자력과 핵추진잠수함, 조선산업이 한 묶음으로 언급되면서, 한국 기업들은 대미 투자 확대에 필요한 제도적 명분과 사업성을 동시에 확보하게 됐다는 분석입니다.
HD한국조선해양이 공개한 소형모듈원자로(SMR) 추진 컨테이너선. (사진=HD한국조선해양)
불확실성이 걷히면서 국내 조선사들의 행보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HD현대중공업(329180)은 이미 지난해 미국선급(ABS)으로부터 소형모듈원자로(SMR) 추진 대형 컨테이너선에 대한 기본설계 인증(AIP)을 획득하며 기술적 검증을 마친 상태입니다. 여기에 미국 테라파워와의 협력을 통해 SMR 주기기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어, ‘기술 파트너’로서 입지를 공고히 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한화오션(042660)은 국내 기업 최초로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를 거점으로 미 해군 함정 사업 진출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업 재건의 핵심 거점으로 필리조선소를 직접 언급해온 만큼, 향후 핵잠수함 건조와 유지·보수·정비(MRO)의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력이 방산을 넘어 에너지 운송 시장의 지형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핵잠수함 협력을 군사적 영역에만 한정해볼 필요는 없다”며 “일반적인 SMR이 건물급 규모라면 잠수함에 탑재되는 원자로는 훨씬 더 소형화된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선박용 초소형 원자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 기술을 확보할 경우 미국과 캐나다도 아직 보유하지 못한 원자력 추진 쇄빙 LNG 운반선 등 북극항로용 특수 선박 시장까지 선점할 수 있다”며 “산업적 파급 효과가 큰 만큼 정·재계 차원의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