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최근 내란 선동 혐의 등으로 기소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를 대상으로 법관 기피를 신청했지만, 법원으로부터 기각됐습니다. 황 전 총리는 지난달 20일 자신의 사건을 심리하는 형사합의35부가 공정한 재판을 진행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면서 기피신청을 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제출한 증거 상당수가 채택되지 않았고, 재판부가 유무죄를 예단하는 듯한 소송 지휘를 했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습니다. 특히 재판부가 윤석열씨 체포 방해 사건에 대해 내린 판단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2025년 11월20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선고 기일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치적·사회적 파장이 큰 인물들의 재판에서 기피신청은 단골 소재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기피신청이 인용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어, 일각에서는 이 제도가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한 '시간 벌기용 꼼수'로 남용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헌법 제27조 제1항은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보장하고 제103조는 사법부 독립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을 통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에 따라 형사소송법은 공평한 법원을 구성해 공정한 재판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법원 직원에 대한 제척·기피·회피 제도를 규정하는 겁니다. 법관뿐만 아니라 법원사무관 등과 통역인에 대한 제척·기피·회피도 가능합니다. 형사소송법 제17조는 구체적인 사건의 심판에서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현저한 유형을 규정해 그 사유가 있으면 법관이 당연히 재판에서 배제되는 제척 사유를 규정합니다.
제척 사유 9가지는 법관이 △피해자인 때 △피고인이나 피해자의 친족 또는 친족관계가 있었던 때 △피고인이나 피해자의 법정대리인, 후견감독인인 때 △사건에 관해 증인, 감정인, 피해자의 대리인으로 된 때 △사건에 관해 피고인의 대리인, 변호인, 보조인으로 된 때 △사건에 관해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 직무를 행한 때 △사건에 관해 전심재판 또는 그 기초되는 조사, 심리에 관여한 때 △사건에 관해 피고인의 변호인이거나 피고인·피해자의 대리인인 법무법인 등에서 퇴직한 날부터 2년 이내인 때 △피고인인 법인·기관·단체에서 임원 또는 직원으로 퇴직한 날부터 2년 이내인 때입니다.
기피 사유로는 제척 사유가 있는 경우 외에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라는 일반조항을 통해 다양한 공평성이 우려되는 상황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란, 당사자가 불공평한 재판이 될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만한 주관적인 사정이 있는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통상인의 판단으로서 법관과 사건과의 관계상 불공평한 재판을 할 것이라는 의혹을 갖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 때라고 봅니다.
기피신청이 접수되면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소송 절차는 중단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기피 사유가 확정된 때부터 그 법관의 소송행위는 효력이 없게 되므로 그 법관이 계속 소송을 진행한다면 소송 절차가 불안정하게 될 수 있어 당연한 조치입니다. 기피신청에 대한 기각결정에 대해 즉시항고 등의 절차를 거치면 소송절차를 계속 정지하게 됩니다. 이런 효과를 이용해 본인에게 유리한 시점까지 재판을 전략적으로 지연시킨다고 의심되는 사례가 생기는 겁니다.
전략적인 소송 지연을 목적으로 제도를 악용하는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신청을 받은 법원이나 법관이 직접 간이기각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기피신청의 원인이 매우 추상적으로 규정돼 있어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소송 지연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기피를 당한 법관이 스스로 자신에 대한 기피신청을 기각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헌법재판소도 간이기각제도가 형사소송절차의 신속성이라는 공익 달성에 필요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즉시항고에 의한 불복도 가능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간이기각결정을 내린 경우에는 즉시항고를 하더라도 소송절차를 정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기피신청이 제기됐더라도 시기를 놓치면 더 이상 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을 요하는 소송행위는 예외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회피 제도는 법관 스스로 제척사유나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다고 판단한 경우 자신의 신청에 의해 자발적으로 직무집행에서 배제하는 제도입니다. 회피는 형사소송법상의 사유가 생기면 해야 하는 직무상 의무입니다.
법관이 아닌 법원의 직원들과 통역인은 직접 사건을 심리·재판하는 기관은 아니지만 조서의 작성, 소송서류의 송달, 통역 등 재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직무를 수행해 간접적으로 재판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므로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법관에 대한 제척·기피·회피 규정을 준용하고 있습니다.
법관 기피신청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법원은 법관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어 법관의 기피신청을 엄격하게 심사합니다. 그러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누적된 상황에서, 지나치게 낮은 인용률은 오히려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법관의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제척·기피·회피 제도가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제도의 합리적인 개선 방안 마련이 필요합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