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출동 확대'와 맞바꾼 보험사 CEO 국감 출석

입력 : 2025-10-14 오후 2:08:44
[뉴스토마토 신수정 기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확정된 손해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줄이 출석을 피했습니다. 이문화 삼성화재 대표, 정종표 DB손해보험 대표, 이석현 현대해상 대표, 김중현 메리츠화재 대표, 구본욱 KB손해보험 대표, 나채범 한화손해보험 대표 등인데요. 이들은 15일 국감에 나와 도서·산간 지역 자동차보험 긴급출동서비스 차별 의혹과 관련 추궁받을 것으로 알려졌으나, 국감 출석 이틀 전인 13일 전국 단위로 긴급출동서비스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약속하면서 소환이 철회됐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참석한 증인들이 선서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뉴시스)
 
정무위·행안위·농해수위까지 국감 회피
 
14일 국회 등에 따르면 서삼석 민주당 의원은 섬·벽지 자동차보험 긴급출동서비스 불이익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삼성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메리츠화재·KB손해보험·한화손해보험 등 국내 주요 보험사 CEO들을 농해수위 국감 참고인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서 의원은 전날 오후 돌연 주요 손보사 CEO의 참고인 소환을 물렸습니다. 서 의원실 관계자는 "이날 참고인 철회를 신청했고, 확정돼 추가 검토하는 상황"이라며 "철회된 상황으로 알고 계시면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서 의원이 참고인 소환 요처을 철회한 건 메리츠화재를 제외한 5대 손해보험사가 의원실에 '지리적 구분 없이 전국 어디서나 차량 긴급출동서비스를 동일하게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전했기 때문으로 확인됐습니다. 서 의원은 지난 2일 이들 손보사가 '자율약관'을 근거로 섬과 벽지에 긴급출동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 실태를 공론화했습니다. 이어 불공정한 약관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검토한 적이 없었다며 차별적 조항을 추궁하고, 현행법 위반 여부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겠다며 손보사 CEO들을 국감장에 소환 예고했던 것입니다. 
 
서 의원실과 5대 손보사는 여러 차례 간담회를 거쳐 약관 개정을 통한 서비스 전면 시행 계획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한화손해보험을 시작으로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약관을 개정할 예정입니다. 내년 1월엔 삼성화재, 당해 9월까진 DB손해보험·KB손해보험·현대해상이 개정 완료를 목표로 약관을 개정해갈 계획입니다. 
 
서 의원실 관계자는 "(긴급출동서비스 전국 시행과 관련) 저희 의원실에서 단독으로 진행했다"고 했습니다. 의원실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국감장에 소환될 위기에 처하자 보험사들이 해결 방안을 들고 국감 출석을 피한 셈입니다. 
 
이날 행안위 국감에 일반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던 정종표 DB손해보험 대표, 구본욱 KB손해보험 대표, 송춘수 NH농협손해보험 대표도 각사 본부장급 실무 임원이 참석하는 것으로 변경됐습니다.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해 박정현, 서범수 등 다수 의원들이 보험사 CEO를 불렀지만, 전날 일부 의원들의 증인 철회 신청이 들어오면서 이같이 최종 협의가 이뤄졌습니다. 
 
당초 행안위 국감에선 보험사 CEO들을 상대로 풍수해보험의 낮은 가입률과 보험료 책정 구조, 과도한 수익성 문제를 지적할 예정이었습니다. 풍수해보험은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신속히 복구하고 농어촌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2006년 도입된 정책성 보험입니다. 최근까지 3~5% 수준의 부진한 가입률에 비해 보험사 수익률이 약 70%에 달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국감 면피용 합의 '관행화' 우려
 
(그래픽=뉴스토마토)
 
의원실 중재를 통해 국감 직전 출석을 피한 금융사 CEO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23년 정무위 국감에선 발달지연장애 보험금 지급 논란으로 이성재 전 현대해상 대표가, 반려동물(펫) 전문 보험사와의 정보(기술) 탈취 논란으로 정종표 DB손해보험 대표에게 각각 증인 출석이 요구됐습니다. 
 
그러나 국감 당일 갑자기 강훈식 민주당 의원이 "보험계약자들의 부당함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현대해상에 약속을 받아냈다"며 증인 명단에서 취소했습니다. 당시 현대해상은 발달지연아동 치료 관련 제도가 미비한 부분으로 인해 보험사와 보험계약자 간 의견이 충돌됐던 부분을 고려해 일정 기간 치료에 대한 실손보험금을 지급키로 약속했습니다. 
 
DB손보는 정무위 종합 국감을 며칠 남겨두지 않고 돌연 국감 증인 명단에서 제외됐습니다. 정무위 관계자는 "정 대표에 대한 증인 채택 건은 철회로 공식 처리됐다"고 확인했지만, 증인 철회 이유에 대해선 함구했습니다. 
 
2022년 정무위 국감에서도 한화생명 법인보험대리점(GA) 자회사인 한화생명금융서비스가 소속 보험설계사 불합리한 대우를 질책하기 위해 구도교 전 대표를 증인으로 출석시키려다 무마됐습니다. 증인 출석을 요청했던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실이 나서 사측과 설계사 간의 처우 개선 간담회를 개최해 설계사들의 처우 개선을 합의했습니다. 문제가 원만히 해결됐다는 이유로 국감 증인 채택은 취소됐습니다. 
 
당시 최 의원실은 "한화생명금융서비스 사측과 보험설계사 측이 의원실에서 주재한 간담회에서 보험설계사 처우 개선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설계사 처우와 관련된 증인 출석 요구에 대한 사유가 일부 소명돼 증인 채택을 철회했다"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국감 출석 요구 부담을 지워 금융사들이 적극적으로 문제 개선에 나설 수 있게 한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으나,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제도 개선을 이유로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당하고, 금융사 CEO들이 소명과 책임을 피한다는 의견도 여전합니다. 
 
실제 국감을 마친 이후에도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보험설계사 노조로부터, 현대해상은 대립각을 펴왔던 보험계약자들로부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볼멘소리가 나왔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년간 보험사들은 빠른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국감대에 오르는 것을 피해왔다"며 "문제가 완벽히 해소되기까지 관심이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해 실질적인 문제 해결로 이어지긴 힘들다는 점을 악용할 여지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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