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리업 시범사업, 시작 전부터 실효성 우려

입력 : 2026-02-24 오후 1:56:42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은행 대리업' 시범사업이 시행 전부터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은행 대리업은 금융 접근성이 낮은 지역이나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비은행에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게 만든 제도인데요. 영업 중복 우려 등으로 참여 기관이 저조한 상황입니다. 은행 입장에서도 대리점포에서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은 은행이 져야 한다는 점에서 참여를 꺼릴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상호금융·지방은행 참여 거부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당초 은행 대리업 시범사업자로 지방은행과 농협 등 상호금융권도 거론됐지만 최종 참여 대상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KB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은행과 우정사업본부, 9개 저축은행을 은행 대리업 서비스 혁신금융사업자로 지적했습니다. 올 상반기부터 전국 20여개 총괄 우체국에서 이들 은행의 대출상품을 판매하며 이후 예금상품과 저축은행 업무로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은행 대리업은 예·적금 가입, 대출 상담·신청, 계좌이체 등 환거래를 포함한 은행의 고유 업무를 제3자가 대신 수행하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고객 상담과 신청서 접수는 우체국이 맡고, 대출 심사와 승인 등 핵심 의사결정은 은행이 직접 수행합니다. 점포 축소로 금융 접근성이 낮아진 지역에서 은행 창구 역할을 대신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입니다.
 
BNK부산은행과 경남은행 등 지역은행은 은행 대리업 수탁자로 거론됐지만 노동조합 반대가 커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역 거점은행이 시중은행 상품을 대신 판매할 경우 지역은행의 기존 영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서민층이 주로 이용하는 농협 등 상호금융권도 은행 대리업 수탁자로 추진됐지만 난색을 표했다는 전언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역 단위농협과 업무가 중복될 경우 조합 영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상호금융 특성상 지역 기반이 곧 경쟁력인데 동일 생활권 내에서 시중은행 상품을 대리 취급할 경우 조합의 존립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현재까지 시범사업 참여가 확정된 곳은 우체국과 일부 저축은행입니다. 전국적 점포망을 갖춘 우체국과 지역 밀착형 저축은행을 통해 은행 서비스를 보완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이처럼 참여 기관이 축소되면서 은행 대리업 참여 규모는 애초 구상보다 작이질 가능성이 큽니다. 단순히 특정 업권이 참여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영업 중복 우려가 부각됐기 때문입니다.
 
은행권 노조로 불리는 전국금융산업노조 역시 은행 대리업 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금융노조는 은행 대리업이 단순 업무 위탁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하며 금융서비스의 외주화와 금융 일자리의 비정규·하청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은행 대리업이 영업 중복을 초래할 뿐 아니라 시중은행의 점포 통폐합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점포를 줄여도 대리 창구가 있으니 문제없다는 논리가 형성될 경우 오히려 지역 금융 인프라 축소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섞여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은행 대리업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하고 올해 상반기 중 시범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서울중앙우체국 창구에 시중은행 입출금 업무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영업중복·책임소재 난제 여전
 
은행 대리업 사업자가 처리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 범위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우체국과 지방은행의 전체 점포 수는 각각 최대 200여곳으로 거론되는데, 이 중 타 금융기관 상품을 취급할 수 있는 점포는 절반에도 못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전산 시스템 연계, 내부통제 장치, 인력 교육 등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복잡한 금융상품보다는 단순 환거래 위주로 운영될 가능성이 큽니다. 대출 심사나 고난도 상담 업무까지 원활히 수행하기에는 현실적 제약이 많습니다.
 
책임 소재가 과도하게 은행업 위탁자(은행)에 쏠린다는 점도 부담입니다. 우체국 등 비은행기관이 은행 대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내부통제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리업자의 영업 행위 규제 등이 관건으로 꼽힙니다.
 
여야는 은행대리업자에 대한 내부통제 감독과 금융사고 책임 의무를 은행에 지우고 있습니다. 이정문 민주당 의원과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 발의안을 보면 "은행은 은행대리업자가 은행 대리업을 영위하면서 이용자에게 입힌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다만 "은행이 상당한 주의를 기울인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단서 조항이 달려 있습니다. 금융당국 역시 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을 은행이 부담하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은행권에서는 은행 대리업의 실효성을 두고 엇갈린 평가가 나옵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론적으로는 한 곳의 우체국에서 여러 은행의 금리를 대면으로 비교하고 정책서민금융 상품까지 안내받을 수 있다"며 "전문성이 결여된 대리 창구에서 복잡한 대출상품 설명이 부실하게 이뤄질 경우 접근성 확대가 아닌 불완전판매의 확산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금융 접근성 제고라는 명분 아래 도입되는 은행 대리업이 실제로 금융 소외계층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는 우려 섞인 시각도 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시재 관리를 비롯해 출납, 보이스피싱 의심 거래 대응까지 은행 창구 직원들은 업무 숙련도 가 높은 반면 비은행 기관들은 위탁받은 업무를 수행할 때 사고 대응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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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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