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부(富)는 단순히 통장의 숫자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의 크기'입니다. 자산을 굴리기 위해 나의 시간과 생명력을 갈아 넣고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경제적 자유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나의 물리적 시간에 갇힌 액티브 인컴(근로소득)을 넘어, 자산이 나를 대신해 돈을 버는 패시브 인컴(자산소득) 시스템을 구축해 가장 희소한 자산인 '시간'을 되찾는 것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통화 팽창기를 맞아 현금의 가치 하락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진실로 다가옵니다. 한국과 같은 개방경제 체제에서는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실물경제 성장을 압도하면서, 물가상승과 원화 가치 하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내 자산이 녹아내리는 것을 막으려면 명확한 기준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의 일상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자산의 구매력을 지켜낼 방법은 무엇일까요. 총 4회에 걸쳐 전 세계 다양한 자산에 넓게 분산투자하고, 데이터와 퀀트 시스템에 기반해 위험(변동성)을 통제하는, 부의 보존과 성장을 동시에 달성하는 방법론인 '글로벌 자산배분 퀀트 투자'에 대해 알아봅니다. (편집자 주)
'현금은 쓰레기(Cash is Trash)'라는 격언은 통화 팽창기에 더욱 빛을 발합니다. 특히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에서는 국내 통화량 증가에 따른 물가상승(내적 가치 하락)과 환율상승에 따른 대외 가치 하락(외적 가치 하락)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됩니다.
유동성의 크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바로 광의통화(M2)입니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광의통화는 단 한 번의 꺾임도 없는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습니다. 이는 실물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와는 무관하게, 시중에 풀린 돈의 총량 자체가 시스템적으로 끊임없이 팽창해 왔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쏟아부은 유동성 공급은 이러한 현상에 거대한 불을 지폈습니다. 경제 방어를 명분으로 시중에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풀려나갔고, 이는 곧 우리가 지갑 속에 쥐고 있는 '화폐 가치의 희석'을 폭발적으로 가속화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유동성 확대…원화 약세
국가 경제의 기초 체력을 의미하는 실질 경제 성장(GDP) 속도보다 시중에 풀리는 돈(통화량)의 증가 속도가 빠르다면, 물가는 필연적으로 상승합니다.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양은 한정되어 있는데, 이를 쫓는 돈의 양만 커지기 때문입니다.
국가 경제 규모 대비 시중에 돈이 얼마나 과도하게 풀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GDP 대비 광의통화(Broad Money) 비율'에서 한국은,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통계적인 수치의 차이가 아닙니다. 실물경제의 성장이라는 탄탄한 뒷받침 없이 유동성만 팽창해 왔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지표는 원화 한 단위의 실질적인 가치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음을 증명합니다.
한국의 GDP 대비 광의통화(Broad Money/GDP) 비율이 OECD 평균 대비 38% 이상 높은 것은 실물경제 규모에 비해 시중에 유동성이 과도하게 풀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화폐 한 단위당 가치를 희석시켜, 대내적인 인플레이션과 대외적인 원화 약세의 근본 원인이 됩니다.
실질실효환율, 원화의 '진짜 가치'
우리가 매일 경제 뉴스를 통해 가장 흔하게 접하는 지표는 '원·달러 환율'입니다. 하지만 경제의 이면을 살펴보고 내 자산을 지키기 위해 정말로 주목해야 할 지표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와 무역을 하는 주요 교역국들의 통화가치와 물가 변동까지 모두 종합적으로 반영해 원화의 '진짜 가치'를 보여주는 실질실효환율(REER: Real Effective Exchange Rate)입니다.
실질실효환율이란 쉽게 말해 '원화의 실질적인 구매력 종합 성적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기축통화인 달러 하나만을 1대1로 비교하는 명목 환율과 달리, 우리나라와 무역을 하는 여러 주요 교역국의 통화가치 비중을 반영하고, 나아가 각국의 물가 변동까지 모두 종합하여 산출합니다. 즉, 전 세계 시장에서 원화가 실제로 얼만큼의 물건과 서비스를 살 수 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조용히 파괴되는 '실질 구매력'
최근 이 실질실효환율 지수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한국 제품의 해외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니 수출 기업과 국가 경제에는 오히려 호재가 아니냐"며 안도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현상을 '개인의 지갑' 관점으로 보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실질실효환율의 하락은 곧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 안에 사는 우리가 해외의 재화나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체감 비용이 급등하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똑같은 100만원을 쥐고 있어도 수입품을 구매하거나, 글로벌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해외로 여행을 떠날 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치는 과거보다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원화 자산의 '실질 구매력'은 조용하지만 아주 확실하게 파괴되고 있습니다.
자본유출 가속화·글로벌 공급망 재편
그렇다면 우리 지갑 속 원화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은 왜 하락하는 것일까요. 이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닌, 대한민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흔드는 3가지 구조적 균열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먼저, 자본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서학개미'들의 자금이 썰물처럼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국가의 거대한 자본인 연기금마저 수익률 제고를 위해 해외 자산 투자 비중을 대폭 확대고 있습니다. 이는 원화를 팔고 달러 등 외화를 사들이는 구조적 압력을 낳아, 필연적으로 원화 가치의 하락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수출 구조의 뼈아픈 변화와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거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을 견인했던 '중간재 중심의 대중국 수출' 공식이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글로벌 공급망이 자국우선주의를 바탕으로 급격히 재편되면서, 과거처럼 막대한 무역 흑자를 통한 유입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는 곧 상대적인 원화 가치의 약세로 직결됩니다.
인구구조적 한계가 부른 원화 자산의 매력도 저하도 실질실효환율 하락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한국은 유례없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는 저성장 기조를 야기하였고 잠재성장률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활력을 잃어가는 경제체제에서 발행되는 원화 자산은 글로벌 투자자들의 눈에 점차 매력을 잃어갈 수밖에 없으며, 이는 장기적인 통화가치 하락의 피할 수 없는 원인입니다.
여상민 HR자산운용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