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국제대회 유치의 관행, 외교협상에도 적용할 수 없을까

입력 : 2026-03-03 오전 8:07:56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예술산업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해외 순회전 갈라 디너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가 올림픽이나 월드컵, 세계박람회와 같은 대형 국제행사를 유치할 때 우리는 익숙한 장면을 목격해왔다. 정부 관료들뿐 아니라 주요 기업 총수들이 전면에 나서 홍보대사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이다. 이들은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 인사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고, 기업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지지를 확보한다.
 
유치에 성공하면 그 효과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선다. 국가 브랜드가 상승하고 관광·인프라·첨단산업이 동반 성장한다. 동시에 기업 역시 글로벌 위상을 높이며 실질적 이익을 얻는다. 국익과 기업 이익이 맞닿는 지점에서 '민관 총력전'이라는 방식이 하나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질문을 던질 시점이다. 이러한 방식은 왜 외교협상, 특히 전략적·구조적 이해가 걸린 중대 사안에는 적극 활용되지 않는가? 오늘날의 외교 현안은 의전이나 수사의 문제가 아니다. 첨단기술 통제, 공급망 재편, 에너지 안보, 방위산업 협력은 곧 국가 생존과 직결된다.
 
그중에서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보는 원자력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자립도에 직결되는 핵심 과제다. 더 나아가 이는 민수 원자력의 범위를 넘어 핵추진잠수함과 같은 해군용 원자로 문제 등 안보 사안과도 연결된다.
 
이 과정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포괄적 안전조치협정 제14조(비금지 군사활동에 대한 적용 예외)와 같은 복잡한 법적 쟁점도 얽혀 있다. 제14조는 비확산 의무를 유지하면서도 핵물질을 비폭발성 군사적 용도, 예컨대 해군 추진용 원자로에 사용할 경우 일정 절차에 따라 안전조치 적용을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이는 자동 승인 조항이 아니라 사전 통보, 기술적 협의, 투명성 확보가 전제되는 조항이라는 점에서 고도의 외교 설계와 국제적 신뢰가 요구된다.
 
역사적으로도 참고할 사례가 있다. 일본은 1988년 발효된 미·일 원자력협력협정을 통해 일정 범위 내에서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포괄적 사전 동의(programmatic consent)'를 확보했다. 이는 단순한 관료 협상의 산물이 아니었다. 정치권과 재계 지도자들이 장기간 미국 의회와 정부, 산업계, 정책 커뮤니티를 상대로 설득과 조율을 병행했다. 일본의 산업 역량과 연료주기 관리 능력, 미·일 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입체적으로 제시한 결과, 일본은 농축 및 재처리 권한을 제도적으로 보장받는 데 성공했다.
 
특히 미국의 정치 구조를 감안하면 민간 외교의 전략적 활용은 더욱 중요하다. 미국은 행정부뿐 아니라 의회의 권한이 막강하다. 원자력 협력, 수출통제, 예산, 조약 승인 등 핵심 사안 상당수가 의회의 영향권에 있다. 협상은 행정부가 주도하더라도, 지속성과 정치적 정당성은 의회와의 관계 속에서 확보된다. 글로벌 기업 수장들은 장기적 네트워크와 투자·고용이라는 실질적 지렛대를 통해 정책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국제대회 유치 때와 마찬가지로, 원자력·에너지·첨단산업 분야의 재계 지도자들에게 일정한 공공외교 역할을 위촉하는 방안은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이는 정부 협상을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라, 협상의 외연을 확장하자는 제안이다. 의회 인사와 싱크탱크, 산업계 리더를 상대로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설득을 병행한다면 단발성 협상보다 훨씬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이해충돌 관리, 책임성 확보, 국가 전략과의 정합성이라는 과제도 뒤따른다. 민간 외교가 국가 전략을 왜곡하거나 사익 추구로 비칠 경우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명확한 역할 규정과 투명한 관리 체계가 전제돼야 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단기적 경제 효과를 창출한다. 그러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보는 차원이 다르다. 이는 해외 연료비 지출을 줄이고, 원자력 산업 생태계를 고도화하며, 에너지와 안보 측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는 장기 과제다. 일회성 행사를 넘어 수십 년간 국가 경쟁력과 전략적 선택지를 좌우할 구조적 사안이다.
 
국익은 구호로 지켜지지 않는다. 전략과 네트워크, 그리고 장기적 안목을 지닌 주체들의 결합 속에서 현실이 된다. 국제행사 유치에서 축적한 민관 협력 경험을 외교협상, 특히 원자력 자율성과 해군 추진용 원자로 협력 문제에까지 확장할 필요가 있다.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우리 역시 국익을 중심에 둔 전략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외교를 관료 조직의 전유물로만 보는 인식을 넘어, 체계적으로 관리된 민관 협력 외교 모델을 모색할 시점이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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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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