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통산업은 규제 산업이다. 규제 목적은 다양성 확보다. 다양한 유통기관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소비자에게 더 좋은 복지를 제공하고, 환경 변화에도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규제는 반드시 비효율을 초래한다. 규제가 갖는 더 큰 위험성은 규제가 법이 되면 본래 목적과는 분리되어 규제 자체가 자생력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규제를 철폐하려 하면 규제로 기득권을 얻은 세력의 저항에 마주치게 된다.
작년 가을 유통학회는 대학생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했다. 주제는 신규 출점 백화점과 지역 상권 상생 방안이었다. '유통경로관리'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지도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이들이 낸 아이디어는 실현 불가능했다. 신규 출점 백화점이 지역 상권의 거점을 잇는 셔틀버스를 운영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서비스는 2001년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때문에 전면 중단됐다. 사실관계를 확인한 학생의 반응은 ‘소비자들에게 편리한 서비스인데 왜 못하게 하지’라는 것과 ‘우와, 나보다 더 오래된 규제네’라는 두 가지였다.
이 모순된 반응에는 이유가 있다. 유통업체 셔틀버스는 백화점이 모객하는 과정에서 동네 상권에 대한 우회 수단이라는 점에서 규제 대상이 됐다. 그러나 규제가 도입된 후 백화점의 부심 생활권에 대한 침투가 약화된 틈을 타 시장에 정착한 것은 대형마트였다. 대형마트는 매출액 규모에서 백화점을 추월하는 성장세를 이어나갔고, 2004년에는 가장 강력한 업태로 자리 잡았다. 현재 이 규제는 사실상 도입 당시의 목적이 사라졌지만, 그 사이 백화점은 자가용 쇼핑객에 적응했고, 서비스를 강화할 의지는 없지만 새로운 기득권으로 등장한 지역운송업체는 규제 철폐에 반대했다. 이후 규제 대상은 대형마트로 옮겨 가게 된다. 문제는 규제 대상의 선정에서 대형마트 성장이 주변 상권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고려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성장성이 큰 소매 업태이기 때문에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으로 도입된 대형마트 규제의 핵심은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도입이었다. 이 규제는 업태로서 대형마트의 성장을 막자는 것으로 목적이 바뀌었다. 2010년대 온라인 쇼핑의 성장에 따라 지역 점포를 물류 거점 삼아 온라인 배송을 겸업하는 하이브리드 점포로 전환하려는 대형마트사의 노력은 규제 대상이 됐다. 영업제한 시간에 이뤄지는 배송 준비 역시 영업활동으로 확대 해석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통 혁신의 시도를 실정법이 가로막은 사례가 됐다. 또 대형마트 운영사가 업태를 다양화해 지역 상권과 협업하려는 노력으로 구축된 가맹 슈퍼마켓 사업도 규제 대상이 됐다. 이들 가맹점주는 더 효율적인 운영을 추구하던 중소상인일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대형마트는 경쟁력이 약해졌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받은 이후 2022년 백화점 총매출액 37조원에 비해 대형마트 매출은 34조원로 재역전을 당했다. 유통산업에서 차지했던 주도적 역할을 잃게 된 것이다. 존재감이 약해진 대형마트에 대한 사회적 경계심도 더 약해져 왔다. 2022년 대한상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 영업 규제는 세수 감소, 고용 감소, 지역 매출 감소를 불러일으켰다. 2021년 이후에는 대형마트 점포 수 현황도 순감소로 업계는 위축되어 갔다. 대형마트 휴일 규제가 주변 상권의 침체로 연결되어 지역 내 소비는 줄어들고 지역 밖으로의 소비 유출이 늘어난다는 학계의 연구도 있다. 상황이 이런 데도 불필요한 규제가 유지되는 이유는 백화점 규제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규제 자체의 자생성밖에 없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마트 내 임대 매장을 안내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사진=뉴시스)
최근 전쟁이 낳은 유가 상승과 같은 요인까지 겹쳐 세계적 불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규제 철폐 압력은 오히려 교역 상대국에서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는 우리 소매 기업들이 불합리한 규제에 묶여 대응 능력을 키우지 못한 사이에 자본과 글로벌 소싱 능력으로 무장한 외국계 소매 기업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소매 산업 발전에 대한 독자적 방향 모색이 제약될 것이다.
이미 4~5년 전부터 대형마트 규제의 불합리성에 대한 소비자, 학계, 산업 전문가의 의견은 거의 합의에 이르렀다. 온라인 배송 준비 및 진행에 대한 규제 철폐는 물론이고, 영업일 규제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절실하다. 대형마트의 물류 역량을 온라인 유통과 가맹 슈퍼사업의 활성화를 통한 지역 유통 활력 회복에 활용하는 것이 우리 소매 산업에서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규제에 대한 검토는 제자리를 돌다가, 중동 전쟁과 다른 경제 쟁점에 가려져 점차 동력을 잃어가는 중이다. 만약 이번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10년 후 새로운 세대에게 똑같은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소비자에게 불편을 끼치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오래된 규제는 왜 그대로인가요?”
이동일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한국유통학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