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통신 보안의 진화, 질책보다 '개선의 속도'에 주목해야 할 때

황동현 한성대학교 특임교수

입력 : 2026-03-31 오전 11:39:39
최근 통신 시장의 화두는 단연 '보안'이다. 지난해 발생한 악성코드 침입과 개인정보 탈취 사고는 우리 사회에 작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100만 명에 달하는 고객 이탈을 겪은 사업자가 있는가 하면, 소형 기지국인 팸토셀의 취약점이 노출돼 금전적 피해가 발생한 사례도 있었다. 사태의 엄중함 앞에 최고경영자(CEO)들의 사과가 이어졌고, 보안 투자 확대와 유심 교체, 위약금 면제 등 전례 없는 후속 조치들이 단행되면서 논란은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의미를 통신 산업 내부의 문제로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 최근 물류·플랫폼 영역에서 발생한 이른바 '쿠팡 사태'까지 고려하면, 보안 리스크는 이미 통신을 넘어 플랫폼·유통·물류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개별 기업의 관리 실패가 아니라, 초연결 디지털 경제 구조 자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특히 통신3사를 중심으로 한 인프라 영역은 이러한 디지털 생태계의 기반이라는 점에서, 보안 문제는 곧 산업 전체의 신뢰 문제로 직결된다.
 
하지만 파장은 여전하다. 통신시장 전체가 보안에 대한 깊은 공포에 빠져들었다. "혹시 내 정보도?"라는 두려움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다. 마치 과거 전쟁 중인 이란 테헤란의 시민들이 "우리 집에는 폭탄이 떨어지지 않을 거야"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까지 안전했다면 그것은 완벽한 방어의 결과라기보다 "운이 좋았다"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더욱이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면서 보안 위협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공격은 점점 더 자동화·지능화되고 있으며, 방어 역시 이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동적 경쟁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과거처럼 한 번 구축한 보안 체계로 장기간 안전을 보장받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보안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운영 체계'의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LG유플러스가 추진하는 가입자식별번호(IMSI) 체계 난수화와 그에 따른 유심 업데이트 조치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일각에서는 "경쟁사는 이미 도입한 기술을 왜 이제야 적용하느냐"며 질책의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이는 통신망의 기술적 진화 과정을 간과한 단편적인 비판이다. 기술의 발전은 계단식으로 이뤄진다. 과거의 자물쇠를 떠올려 보자. 초기에는 비밀번호 4자리만으로도 충분히 안전했다. 그러나 해킹 기술이 정교해지면서 6자리, 혹은 그 이상의 복잡한 조합을 요구하는 자물쇠가 등장했다. 이때 4자리 자물쇠를 사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잘못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시점과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위협이 고도화됐을 때, 더 견고한 체계로 얼마나 빠르게 전환하느냐다. LG유플러스의 이번 IMSI 체계 고도화는 바로 이러한 진화적 보안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지난해 타사 사례에서 확인됐듯, 식별번호를 난수화해 암호화 수준을 높이는 것은 보안의 질적인 도약을 의미한다. 비록 적용 시점이 경쟁사보다 늦었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으나, 기존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며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시스템을 전면 재설정하는 것은 분명 평가받아야 할 결정이다. 무작정 비난과 책임 추궁에만 몰두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오히려 기술의 진화를 더디게 만든다.
 
기업이 새로운 기술 도입을 리스크로 인식하게 되는 순간, 혁신은 멈추고 보안은 정체된다. 특히 AI 기반 공격이 빠르게 확산되는 환경에서는 이러한 정체가 곧 취약성으로 이어진다. 기술의 진화는 멈출 수 없는 흐름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메워가는 것이 진정한 발전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통신시장은 늘 치열한 비난과 견제의 장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시대가 변하고 보안 위협이 일상화된 만큼, 서로의 개선 노력을 격려하고 필요한 보안 기술과 대응 경험을 공유하는 성숙한 생태계가 필요하다. 통신3사를 포함한 산업 전반이 경쟁을 넘어 '공동 방어 체계'로 전환할 때, 비로소 디지털 경제 전체의 신뢰가 회복될 수 있다. 결국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기준은 하나다. 누가 먼저 도입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투명하게 문제를 드러내고, 더 빠르게 개선하며, 더 강한 복원력을 만들어내고 있는가다. 비난의 속도를 늦추고, 개선의 속도를 높일 때 고객은 비로소 '운'이 아닌 '기술'이 보장하는 진정한 안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황동현 한성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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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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