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미국과 이란의 협상 데드라인(4월6일)을 일주일여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개 도발'에 나섰습니다. 이란 경제의 심장인 하르그섬을 점령할 수 있다고 밝힌 건데요. '군사적 옵션'을 통해 하르그섬을 점령하고 호르무즈 통제권 확보가 가능하다고 압박하며, 현재진행형인 물밑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사전 포석'을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워싱턴 D.C.로 향하는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르그섬 '점령'과 협상…'양면 전술'
2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파이낸셜 타임스(FT)> 인터뷰와 이스라엘 <채널14>와의 인터뷰에서 각기 다른 취지의 발언을 쏟아내며 '양면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FT> 인터뷰에서 쏟아낸 발언은 '협상 종료' 상황을 방불케 했습니다. 그는 이란 석유 확보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며 이란 석유 수출의 대부분이 이뤄지는 하르그섬을 점령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르그섬은 이란의 원유 수출량 중 90%를 차지하는 석유 수출 터미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석유와 관련해 "미국 내 일부 멍청한 사람들은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멍청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하르그섬 점령 구상은 베네수엘라 작전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한 이후 베네수엘라 석유 이권을 챙기고 있는데, 이란에도 같은 구상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 미국의 군사작전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있는데요. 이란의 심장인 하르그섬을 봉쇄하고 호르무즈 해협의 전략적 요충지인 라라크섬을 침공하는 방식입니다. 또 아랍에미리트 영유권을 주장하는 아부무사섬 등 3개 섬을 점령하거나 호르무즈 해협 동쪽에서 이란산 원유수출 선박을 나포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미국은 중동 지역 병력을 증강하며 지상군 투입 가능성도 연일 띄우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중동에 최근 2500명의 해병 대원과 2500명의 해군을 추가 파견했습니다. 중동 지역 전반에 미군 약 4만명이 배치돼 있는데, 현재는 그 인원이 5만명 수준으로 늘어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란은 정작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카드까지 검토하는 동시에 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지역 인근 국가들을 향해 보복 공격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지상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항전'을 언급하며 강대강으로 맞붙고 있습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 발언과 동시에 <채널14> 인터뷰를 통해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는 점을 부각시켰습니다.
그는 또 이날 워싱턴 D.C.로 복귀하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늘 이란과 직·간접적으로 매우 훌륭한 협상을 가졌으며, 진전이 극도로 순조롭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과 관련해 "이란이 존중의 표시로 내일(30일) 아침부터 대형 유조선 20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공개했습니다. 얼마 전 언급한 이란 측의 '선물'이라는 건데,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고 있다고 부각하는 겁니다.
또 "우리는 사실상 '정권교체'를 이뤘다. 한 정권이 완전히 파괴되어 몰살당했고, 다음 정권 역시 대부분 사라졌다"며 "현재 우리는 과거 상대해 본 적 없는 완전히 다른 '세 번째 집단'과 협상 중이며, 이들은 매우 합리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호르무즈 '통제권' 부각…"에너지 패권 욕망"
이렇듯 트럼프 대통령은 물밑 협상과 군사 타격 가능성을 동시에 띄우며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양면 전략'에 나서고 있습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 유형 중 하나로, 다양한 옵션을 혼란스럽게 던진 후, 상대방이 혼란을 느낄 때 이익을 잡아채는 기법"이라며 "현재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상황을 열어놓고 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단기전이 예상됐던 이란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흐르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변수를 맞이한 바 있습니다. 결국 이란과의 협상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데요.
그는 호르무즈 해협을 "트럼프 해협"이라고 부르며 통제권 확보가 "이미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미 자신이 구상한 대로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확보해 이란의 '봉쇄'가 풀렸다는 주장입니다 .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협상에 대해서도 "우리는 15가지를 요구했고, 그들은 대부분의 항목에 동의하고 있다"며 "몇 가지를 더 요구할 것"이라고 공개했습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미주연구원 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하르그섬 점령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지배', '에너지 패권'에 대한 강력한 욕망을 드러낸 것"이라면서도 "실제 점령은 상당한 희생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실행 여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혼란스럽게 던진 메시지 중 이란도 '트럼프가 원하는 게 이거구나'라고 인지하는 측면이 있다"며 "미국의 15개 제안 중 국제 제재 해제는 이란 측에서도 나쁘지 않은 옵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