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아빠는 까다로워"…거울이 흐려진 리더의 사각지대

입력 : 2026-04-08 오후 4:03:37
언젠가 가족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스스로를 상대의 입장을 잘 살피는 너그러운 아빠이자 가장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아내와 아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이 아는 나는 무척 까다로운 아빠였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이내 불편한 질문 하나가 따라왔다. 그렇다면 직장에서는 어떨까.
 
그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많은 조직에서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자신은 "열린 리더"라고 믿는 직책자가 있다. 그런데 그의 팀원들은 "그분 앞에서는 솔직한 말을 꺼내기가 두렵다"고 한다.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팀장이 있다. 그런데 팀원들은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면, 직장 동료들에게는 오죽할까. 지위가 올라갈수록 거울은 오히려 흐려진다. 이 물음 앞에서 나는 한동안 멈출 수밖에 없었다.
 
리더의 등 뒤에 숨은 가장 위험한 창
 
1950년대 심리학자 조셉 루프트와 해리 잉햄은 '조하리의 창(Johari Window)'이라는 모델을 제안했다. 두 사람의 이름 앞 글자를 합쳐 만든 이름이다. 이 모델은 자아 인식을 창문 네 개로 나눈다.
 
나도 알고 남도 아는 '열린 창', 내가 알지만 남은 모르는 '숨겨진 창',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미지의 창'.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모르지만 남은 아는 '보이지 않는 창'이다. 바로 사각지대(Blind Spot)다.
 
이 네 가지 가운데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사각지대인 이유는 명확하다. 본인만 보이지 않으니 스스로 고칠 수가 없다. 마치 등잔 밑처럼, 가장 가까운 곳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이 사각지대가 넓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지위가 생기면 솔직한 피드백이 줄어든다. 사람들은 리더에게 불편한 말을 꺼리기 시작하고 비판보다 동의가, 지적보다 칭찬이 돌아오는 일이 잦아진다. 리더는 점점 듣고 싶은 말만 듣게 되고, 그것을 현실이라고 믿게 된다. 사각지대는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넓어진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이 함정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것을 나는 스스로에 대한 경계로 삼고 있다.
 
사각지대는 조직 전체를 표류하게 만든다
 
리더의 사각지대가 커지면, 조직 진단 자체가 흔들린다.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 대신 엉뚱한 원인을 찾아 헤매게 되기 때문이다. "팀원들의 역량이 아직 부족해서", "원래 소극적인 사람들이라서"라고 단정하고 만다. 정작 문제의 일부가 리더 자신의 방식에 있을 수 있는데, 그 가능성은 처음부터 지워진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조직 안에 묘한 패턴이 자리 잡는다. 회의 자리에서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지만, 자리를 벗어나면 전혀 다른 말들이 오간다. 보고서는 리더가 듣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다듬어지고, 불편한 현실은 숫자 뒤에 숨는다. 구성원들이 나쁜 것이 아니다. 솔직함이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을 뿐이다.
 
구성원들은 이것을 느낀다. 말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역풍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진짜 목소리는 회의실 밖으로 나돌고,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형식적인 말만 오간다. 리더의 사각지대가 깊어질수록 조직의 언어도 함께 공허해지는 것이다.
 
결국 리더의 사각지대는 리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조직이 솔직해질 수 있는지의 문제가 된다.
 
불편한 진실 앞에 안경을 쓰는 용기
 
조하리의 창에서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법은 한 가지다. 타인의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피드백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막상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고 묻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답이 두렵기 때문이다. 내가 믿어온 내 모습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두려움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일대일 대화에서 이 한마디를 건네는 것은 리더의 권위를 낮추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조직 전체의 시야를 넓히는 행위다. 회의가 끝난 후 "오늘 제 방식이 도움이 됐나요?"라고 돌아보는 것, 이런 작은 질문들이 사각지대를 조금씩 좁혀간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덧붙이고 싶다. 피드백을 구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불편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변명하지 않고 끝까지 듣는 것이다. 리더가 그 자세를 보여줄 때, 구성원들은 비로소 숨겨두었던 진실을 꺼낼 안전함을 느낀다. 진심 어린 피드백은 대체로 달갑지 않은 모습으로 찾아오지만, 바로 그 피드백이 사각지대를 비추는 빛이다.
 
피드백을 구한다는 것은 내가 부족하다는 고백이 아니다. 더 잘 보기 위해 안경을 쓰는 것이다.
 
가족의 솔직한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나를 돌아보게 했다. 너그러운 아빠라고 믿었던 나는,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직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생각하는 나와 남이 보는 나 사이 어딘가에서, 조금씩 어긋난 채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 그것이 가정에서든 조직에서든 관계를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당신은 어떤 리더입니까?" 이 질문의 진짜 답은 내 안에 있지 않을지 모른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그 답을 구하는 용기, 그것이 리더십의 출발점이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되고 싶다.
 
김주성 노원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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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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