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다소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으면서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 논의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됩니다. 다만 신 후보자 발언이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조건부 인정'에 가까운 데다 당정 및 여야 간 이견이 여전해 법안 처리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신현송, 스테이블코인 필요성 일부 인정
20일 금융권과 정치권에 따르면 신 후보자는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을 일부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간 한국은행이 민간 가상자산과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사실상 부정적 입장을 유지해 온 것과 비교하면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됩니다.
신 후보자는 "과거에는 스테이블코인과 가상자산에 부정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중앙은행을 이끄는 자리에서는 여러 주체의 의견을 모아 생태계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를 기반으로 한 예금토큰과 보완적·경쟁적으로 공존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이 발언 직후 정치권에서도 전향적 입장 변화로 해석하며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민주당 디지털자산TF는 오는 27일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디지털자산기본법 상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입법 재시동에 나섰습니다.
민주당은 당초 올해 1분기 내 법안 처리를 목표로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안이 계속 미뤄지고 당내에서도 발행 주체, 거래소 지분 규제 등에 대한 이견이 생기며 일정이 공전 중입니다. 여기에 중동 정세 등 현안까지 겹치며 법안 처리는 기약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지난 2023년 제정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이어진 규제 법안인데요. 디지털자산의 발행, 공시, 유통, 거래지원, 회계 등의 규제 내용을 담았습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자산 보호와 불공정거래에 초점을 맞췄다면 디지털자산기본법은 가상자산을 금융시장 인프라 제도권에 편입했습니다.
다만 신 후보자가 말하는 조건부 인정과 정치권이나 시장에서 읽는 개방이라는 사이에 간극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신 후보자는 서면 답변과 청문회에서 스테이블코인·예금토큰·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가 각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디지털 통화 체계의 중심은 CBDC와 예금토큰이어야 한다는 인식도 분명히 했습니다. 대량 환매 위험, 화폐 단일성 훼손, 자본 유출입 확대 가능성, 외환시장 변동성 같은 우려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결국 신 후보자의 발언은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논의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데 의미가 있지만, 제도화 속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은행 중심 발행 구조와 핀테크 참여 범위,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같은 핵심 논점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을 일부 안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았다. 지난 15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신 후보자가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정무위 상정해도 위헌 논란 쟁점
금융당국이 아직 정부안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라 민주당 TF가 선제적으로 법안을 상정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다만 해당 법안의 핵심 쟁점인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과 은행 중심(50%+1)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컨소시엄 구성에 대해서는 당정 간 이견이 여전한 상태입니다. 민주당 TF에서 이들 사안에 대해 원칙적인 반대 입장인데요. 일단 법안소위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라도 해보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디지털자산기본법 내용을 둘러싼 위헌적 논란이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방안은 특정 주주의 지분 보유 한도를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것인데요. 개인 또는 법인의 최대 지분을 약 20% 수준으로 제한하고, 법인의 경우 예외적으로 30%대 중반까지 허용하는 방안으로 이를 초과하는 지분은 시장 매각 등을 통해 강제로 축소해야 하는 방식입니다. 국회 입법조사처와 헌법학계에서는 해당 규제에 대해 재산권 제한과 과잉금지원칙 위반 등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 상태입니다.
정무위 논의 과정에서도 대주주 지분 제한이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입니다. 정무위 의원실 관계자는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도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에 대해 자본주의 원칙에도 맞지 않고 위헌 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며 "상임위 법안소위에 상정되는 것은 그간 진척이 더딘 것에 비해 의미가 있지만 논의 고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 일정이 선거 국면으로 전환되면 디지털자산기본법이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부안 제출 시점과 위헌 논란 등을 고려하면 상반기 처리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9월 정기국회도 넘길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당장 신 후보자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부터 난항이 예상됩니다. 국회는 통상 인사청문회 이후 일정 기간 내 보고서를 채택해야 하지만, 여야 간 이견으로 법정 시한인 이달 23일을 넘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총재 인선 절차 자체가 지연될 경우 정책 방향 설정 역시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당 내에서는 한은이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입장을 바꿀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정무위 소속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그간 한은이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유지해 온 것을 감안하면 총재 취임 이후 입장이 부정적으로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청문회 발언과의 정합성 문제가 제기될 경우 경우에 따라 위증 논란까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습니다.
민주당 디지털자산TF는 오는 27일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 디지털자산기본법 안건을 상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윤한홍 정무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