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란의 종전 협상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들면서 중동 전쟁도 예상보다 훨씬 길어지고 있다. 그사이 지구촌의 모습은 변했다. 국제유가는 어느새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게 일상이 됐고, 각국은 원유 공급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또 지구촌 곳곳에 인플레이션의 경고음은 커졌고, 들썩이는 물가에 각국의 국민들은 시름하고 있다.
한국 역시 2026년의 봄은 여느 봄날과 달랐다. 매년 피는 봄꽃은 그대로인데, 봄꽃 아래 펼쳐진 한국의 일상은 작년과 달랐다. 중동 전쟁으로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기름값 2000원 시대도 도래했고, '민생 안정'이라는 명분하에 '석유 최고가격제'라는 가격 통제 제도도 생겼다. 30년 만에 부활한 제도라는데, 기자는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어느덧 시행한 지 40일이 지났다.
40일여 전, 정부가 유류 공급 가격을 직접 통제하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도입한다고 들었을 때 처음 가졌던 생각이 '가격 통제가 바람직할까'였다. 역시나 예상대로 가격 통제 제도를 둘러싼 부작용이 한 달여가 지난 지금 곳곳에서 들려온다.
우선 국제 휘발유 가격이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전보다 56% 급등했지만, 국내 휘발유 소매가는 18.4% 오르는 데 그치면서 유류 수요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게 유지하다 보니 소비자들이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아직은 괜찮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제도 추진을 독려했던 이재명 대통령마저도 "소비 절감을 해야 할 상황인데, 일부에서 오히려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고 꼬집었을까.
일반 국민이 차를 끌고 다닐 때 기름값 상승으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감당 가능한 수준에 머물다 보니, 소비 억제 효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당장 5월 황금연휴에 차를 끌고 국내 여행을 가겠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여기에 일률적으로 가격을 깎아주다 보니 연료 소비가 많은 고소득층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분배의 역진성도 생겼다. 고유가에 생계를 위협하는 영세 화물차 운전자나 저소득층에게 돌아가야 할 재원이 고급 중대형차를 모는 부유층의 기름값을 보조하는 데 낭비되는 셈이다.
물론 석유 최고가격제가 단기적으론 기름값을 끌어내려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고유가에 따른 민생 충격을 완화했다는 점에선 정책의 긍정 효과를 부정할 순 없다. 그럼에도 중동 상황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기에 이제부터라도 서서히 출구 전략을 짜야 한다. 비상시 도입된 단기 처방은 짧게 끝내야 하는 게 진리다.
장기간 가격 통제가 위험하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가 여러 차례 말해줬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광범위한 연료 보조금, 세금 감면, 가격 상한제는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완화할 수 있지만 비용이 수반된다"며 "이는 비효율적이고 종종 역진적이며 되돌리기 매우 어렵다"고 충고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이제 정책의 초점을 가격 통제에서 벗어나 에너지 소비 체질 개선 등 정교한 틀로 방향을 틀 때다. 이재명정부의 내실 있는 출구 전략, 고민할 때가 왔다.
박진아 정책팀장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