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호석기자] 현대차그룹을 구성하는 계열사들은 거의 대부분 자동차사업과 연관되어 있다.
사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의 생산과 연구개발, 물류, 판매에 최적화된 조직이다.
현대제철 등 제철 분야가 자동차강판을 만들어 내고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부품사들이 핵심부품을 공급하며, 현대기아차가 완성차를 만들어 이를 글로비스 등 물류사와 판매법인들이 글로벌 시장에 내다 파는 '일관 체제'다.
현대차그룹이 과거 제철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자동차 연관 산업이라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겠다고 나섰을때 시장에서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는 등 부정적 반응이 나타난 것은 현대건설 인수의 시너지가 불투명하고 오히려 자동차 분야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시장이 우려한 탓이다.
지금은 현대건설 인수전이 누구의 승리로 돌아갈 것인가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만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이유와 현대건설 인수로 예상되는 악영향은 어떤 것이 있을 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견해의 이유는 그룹 비주력분야에 대한 투자이며, 투자규모도 과도하기 때문이다.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든 현대차, 기아차, 모비스 등 주요 계열사들의 현금성 자산은 1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차만 해도 7조원이 넘는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다.
현대차가 현대그룹보다 승자의 저주에서 자유로운 것은 이같은 막강한 자금동원력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상황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올해엔 일본과 미국 등 현대차의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전통의 강호들이 전열정비를 끝내고 경쟁을 더욱 본격화한다.
이 경쟁자들은 현대차의 눈부신 성과에 주목하고 있으며, 급부상한 현대차를 어떻게든 견제하려 나설 것이 분명하다.
현대차는 또 브라질과 중국에 신규 공장 건설 계획을 갖고 있고 신차개발, 미래 친환경기술 확보 등에는 수천억원 이상의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그밖에 신차 출시에 따른 마케팅 비용, 인재 확보 전쟁, 유가-원자재가 상승 등 비용이 들어갈 일이 널려 있다.
향후 자동차 시장에서 최근 몇년간의 성장세를 계속 이어가려면 이를 유지하기 위해 들여야할 예산이 결코 적지 않다.
현대차그룹은 인수전 입찰금액으로 5조1000억원을 써냈는데 이는 그룹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돈을 현대건설 인수에 쏟아붓는다면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미래 준비에 들일 여력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증권업계 한 애널리스트는 "시장의 우려는 결국 회사 핵심사업이 아닌 부분에 적지않은 돈을 들이려고 한다는 것인데 이를 해소하려면 현대건설을 인수한 것이 매출확대 등 현대차의 성장에 분명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시장에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현대건설 인수는 회사의 필요라기보다는 오너일가의 필요라고 보는 편이 맞을 듯하다.
현대건설을 인수해 비상장사인 현대엠코와 합병, 우회상장하고 여기서 생기는 시세차익으로 추후 그룹 지주회사의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경영권 승계를 완성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현대차는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정몽구 회장이 철저한 실익주의 원칙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거 현대그룹의 모기업을 되찾는다는 것, 그리고 사업다각화의 일환이라고만 설명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대차는 현대건설을 사들여 글로벌 선두권 기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청사진을 내놨지만, 거꾸로 현대건설이 현대차의 발전에 어떤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인지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이 없다.
현대차의 현대건설 인수가 확정된 지금, 현대차는 '현대건설 인수가 주력사업 성장이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를 꾸준히 해소해야 할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
뉴스토마토 이호석 기자 aris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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