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인표기자]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 얼마전 기자가 금융감독원에 올 초부터 3월말까지 퇴직한 임직원의 새 직장에 관한 자료를 요청하자 금감원 인사 관계자가 준 '공식 멘트'였다. 민감한 개인 정보를 요구한 것도 아니고 유관기관 취업 현황 숫자만 알려달래도 거절은 되풀이 됐다.
그럴만 했다.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금감원 퇴직 직원 재취업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작년까지 5년간, 2급 이상 퇴직 직원 88명이 전원 금융기관에 재취업했다.
<퇴직 금감원 직원 재취업 현황>
(단위 : 명 / 자료 : 민주당 조영택 의원)
이중 82명은 감사로 재취업했다. 38명은 일주일 내 새 직장을 찾았고 퇴직 다음 날 유관 금융사로 옮긴 인원도 12명이나 된다. 어제의 감독관이 오늘의 든든한 '빽(보호막)'이 된 셈이다.
금감원 퇴직자(2급이상)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퇴직 3년전 해당 분야에 근무하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은행을 감독하던 직원이 어떻게 다음 날 바로 그 은행의 감사로 옮겨갈 수 있는 걸까?
비밀은 '보직 세탁'에 있다. 은행, 보험, 증권 등 알짜배기 금융사를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가 퇴직을 앞두고 금감원 인력개발실이나 지방출장소로 가면 된다.
3년 후 퇴직 때 부하직원들은 부서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 팀장이 내가 데리고 있던 애야"라며 금융회사의 '좋은 자리'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퇴직한 금감원 임직원이 시중은행 감사로 오면 연봉은 2배 이상 뛰고 전용차량에 비서까지 둘 수 있다.
은행 쪽에서도 이익보는 장사다. 금융회사는 자신을 감독하는 금감원 팀장을 '잘 다룰 수 있는' 금감원의 고참급 임직원을 영입하는 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 시어머니처럼 모시던 분을 며느리처럼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끈'이 생기면서 금감원 감사도 편헤진다.
금감원 출신 감사가 해당 기관을 검사하려고 파견된 금감원 직원을 접대하기도 한다. 실제로 작년 9월 한 지방은행의 금감원 국장 출신 감사가 후배인 금감원 검사반장에게 접대를 했다가 금감원 감찰팀에 현장에서 적발된 일도 있다.
◇ 영업정지 저축銀 감사, 대부분 금감원 출신
일각에서는 퇴직한 금감원 직원의 '전문성'은 인정해 줘야 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금융회사 관리의 오랜 노하우를 묻혀두기 아까우니 감사로 가서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키울 수 있다는 논리다. 정말 그럴까?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경영에 참여하는 저축은행 대주주들은 금감원 직원의 관리 감독을 받다가 이들이 감사로 오면서 월급을 주는 입장이 된다"며 "부실 감사야 예상된 것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실제 올 초 영업 정지된 8개 저축은행 중 3개 은행 감사가 금감원 출신이다.
금감원 출신 감사가 없는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금감원 출신 감사라고 해서 업무 전문성이 높다고 보지 않는다"며 "결국 감사의 전문성 보다는 당국과의 채널 확보 차원에서 이같은 관행이 굳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의 낙하산 인사가 도마 위에 오르자 금감원은 재작년 말부터 ‘감사 공모제’를 권고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작년 감사를 선임한 금융회사 39곳 중 공모를 통해 임명한 곳은 4곳에 불과했고 그나마 3곳도 금감원 퇴직자들만 공모에 참가했다.
◇ 금감원 퇴직자 낙하산에 '신입 낙하산'도
금감원의 입김은 금융회사가 신입행원을 모집할 때도 등장한다.
지난 2009년 정부의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몇몇 저축은행들도 인턴을 선발했다.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인턴이 아님에도 불구, 한 저축은행의 여성 인턴은 유일하게 정규직이 돼 이 내부에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친인척 중에 금감원 간부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저축은행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은행 임원들이 '아무개 지원자는 신경 좀 써라'라는 말을 하면 대충 눈치가 온다"며 "신입행원 20명 중 1명 정도는 금감원 '빽'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영어성적, 학점을 보면 도저히 입사가 어려운데도 결국 들어오는 지원자가 있는데 이들은 업무능력은 물론 조직 적응력도 떨어지는 편"이라며 "대졸자들의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지자 이런 낙하산 입사가 자주 벌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