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혜진기자] 주부 A씨는 국내 모 브랜드 화장품 세트를 사용하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용기 크기로 봐서는 아직 많이 남아 있어야 할 화장품이 바닥을 드러낸 것.
집에 있는 같은 들이 수입 화장품과 비교해보니 용기가 거의 2배나 컸다. 40ml 에센스는 수입 화장품 100ml보다 용기가 컸다.
구입할 때 용량을 확인하긴 했지만 막상 내용물에 비해 터무니 없이 큰 용기를 보니 '속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합리적인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과대포장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국내 화장품 브랜들은 여전히 크고 화려한 용기를 고집하고 있다.
한 소비자는 “국내 브랜드 화장품의 용기를 열어보고 생각보다 너무 적은 양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용량이 표기돼 있더라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늠이 잘 안되기 때문에 용기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브랜드사들은 주로 고급 제품이나 높은 연령대를 타깃으로 하는 제품에 크고 화려한 용기를 사용한다. 제품 고급화 전략이라지만 소비자의 심리를 자극한 '눈속임'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비교적 선호도가 높은 SK-ll, 키엘, 에스티로더 등 해외 명품 화장품들은 오히려 용기가 실용적이고 단순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화장품 업체들이 화장품의 양이 많아 보이려고 꼼수를 쓰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지나치게 큰 용기는 소비자의 판단력을 흐리게도 하지만 화장품 가격 인상과도 직결된다.
화장품 제조원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용기다.
화장품 용기 단가는 1000~4000원으로 보통 제조원가의 30~40%나 차지한다. 가격 상승의 가장 큰 원인에 낭비인 셈이다.
용기가 크고 화려하고 디테일이 많을수록 용기 단가는 높아지고 제조원가가 올라가면서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은 점점 다양해진다”며 “펌프식, 밀폐식 등 기능이 하나라도 더 있는 케이스는 비쌀 수밖에 없고 단지형 크림의 경우에는 과거에는 사용되지 않던 주걱(스패츄얼)까지도 필수품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의 눈은 높아지고 업체들 간에 경쟁적으로 비슷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보니 용기의 중요도가 커지고 있는 것은 어쩔수 없다.
그러나 내용물의 보존과 사용의 편리성을 위해 비싼 용기를 사용하는 경우보다 단순히 디자인을 위한 경우도 많아 소비자가 불합리한 가격 부담을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피만 큰 화장품 용기는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 중 하나다.
큰 용기를 생산하려면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게 된다. 특히 화장품 용기에 사용되는 유리나 사기 재질은 두껍고 품질이 좋은 것이 대부분이다.
더욱이 기초화장품의 경우 소비자들이 위생 문제로 꺼리기 때문에 재활용도 하지 않는다.
빈 용기를 가져오면 할인을 해주는 등의 이벤트를 하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프로모션을 위한 것일 뿐 업계에선 실제로 용기를 재활용하는 일이 거의 없다.
분리배출 의무대상을 용기 크기가 아닌 용량을 기준으로 한 것도 문제가 심각하다.
현행 '자원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에 따라 용량 30ml를 기준으로 그 이하의 용기는 분리배출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업체의 표기 의무도 없어 무관심한 소비자들은 분리수거에 소홀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용량에 비해 용기가 필요 이상으로 큰 화장품은 환경에 큰 타격을 줄수 밖에 없다.
실제로 국내 브랜드의 아이크림 용량은 대부분 15~25ml지만 용기 크기는 수입 화장품의 50ml 크림과 같은 경우가 많다.
김태희 자원순환사회연대 기획팀장은 “우리나라는 용기 재활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리필 역시 출시돼 있는 제품은 종류도 많지 않을뿐더러 대부분 플라스틱 카트리지 형태여서 친환경적이지 못한 데다 가격 차이도 거의 없어 메리트가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아이크림과 같은 소용량 제품의 경우에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50ml 크림(왼쪽·가운데)와 20ml 아이크림(오른쪽)의 용기 크기가 같다.
화장품 선진국인 일본은 용기 재활용을 적극 시행하고 다양한 리필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화려한 용기로 소비자를 현혹하기 보다는 상품의 질을 높이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우리나라에 수입된 오르비스의 경우 거의 전제품의 리필 제품이 출시돼 있다.
가격도 본품에 비해 최대 5000원이나 저렴해 인기 상품의 경우 리필 제품이 더 많이 팔리기도 한다.
이유진 오르비스 과장은 “판매량 1위가 클렌징 리퀴드의 리필 제품”이라며 “가격도 합리적인 데다 환경보호에도 기여하니 의식 있는 소비자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