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와 조사권한을 강화하는 '한은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가 결국 무산됐다. 주요쟁점이었던 단독조사권 조항을 없애는 쪽으로 수정안이 나왔지만 이 조차도 좌절됐다.
금융계와 통화정책 전문가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모피아(재무부 출신 관료 집단)와 국회 상임위원회간에 밥그릇 싸움에 금융감독시스템 개선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 "국회, 한은법 속 '독소조항' 언급 없어"..개정안 통과의지 있나
한은 내부에서는 결국 막강한 로비력을 갖춘 모피아(재무부 출신 관료 집단)들이 기획재정부-금융위-금감원으로 이어지는 금융감독 권한을 쉽게 놓아줄 리 없다는 회의감이 커지고 있다.
이미 국회에는 모피아 출신 의원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는데다, 재정부가 이들을 이용해 적극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또 의원들조차 재정부와 굳이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한은법 개정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단독조사권 못지 않게 한은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폐지해야할 독소조항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정작 이에 대한 얘기는 누구도 꺼내려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배경태 한은 노조위원장은 "이번 개정안에는 한은의 단독조사권이 주요쟁점이었지만 정작 중요한 건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금통위 결정에 대한 재정부 장관의 이의제기권과 금리결정의 최고결정권을 대통령에 부여토록 한 조항 등이 그것이다.
현행 한은법에 따르면 재정부 장관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재정부 차관도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배석할 권리와 함께 열석 발언권을 갖고 있다.또 재정부 장관이 금통위 결정에 이의제기를 하면 금통위는 3분의 2 이상 찬성을 통해 의결해야 하는데 부결시 최종 결정 권한은 대통령에 있다.
물론 지금까지 이의를 제기한 사례는 한차례도 없었지만 원칙적으론 금통위 결정을 재정부가 뒤집을 수 있고 대통령이 금리를 단독으로 결정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김중수 한은 총재가 취임 초 금리결정의 최종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었기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배 위원장은 "법에 최종권한이 대통령에 귀속된다고 명시돼 있다는 것 자체가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다"면서 "하지만 정부의 이의제기권과 같은 독소조항에 대해서는 누구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털어놨다.
◇'슈퍼 갑(甲)' 모피아, 한은에 권한 줄 리 없어.."감독시스템을 뜯어고쳐야"
국회안팎에서도 모든 권한을 움켜쥐려는 모피아와 재정부와 척을 지려고 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이 있는한 한은법 개정안은 계속 표류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회관계자는 "저축은행 사태로 한은법 개정이 이슈가 되긴 했으나 총선을 앞둔 국회의원들에겐 처리해야할 다른 사안이 쌓여있는데다 그들도 모피아들과는 척을 지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국회 통과가 8월이 될지 그 다음이 될지 기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모피아들의 아집에 금융감독시스템이 희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모피아들의 권력욕이 우리나라 금융감독시스템 전체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이번 한은법 개정 무산은 정책과 감독기능이 분리가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것이다.
또 "한은법 개정안이나 금융감독쇄신TF 등으로 법규를 조금씩 바꾸는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모피아로 인한 폐해를 없애려면 금융감독시스템 전체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위원장도 "중앙은행 독립성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나라에서는 법체계가 특별히 문제가 되진 않는다"면서 "우리처럼 정권에 흔들리거나 독립성이 확고하지 않다고 보여지는 나라에서는 법자체로 독립성을 명시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