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 스피치'라는 영화가 있다. 영국 조지 6세의 실화를 스크린으로 옮겨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화제작이다.
주요 줄거리는 말더듬이 왕 조지 6세와 그의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의 우정이야기로,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는 작품이다. 그런데 내게는 이 영화가 좀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우정을 넘어선 '동반성장'의 전형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직전 즈음, 훗날 조지 6세가 되는 영국의 황태자 버티는 치명적인 말더듬이 증상을 갖고 있었다.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열정을 지닌 그였지만, 말더듬이 장애는 늘 버티의 발목을 잡았다.
설상가상 부친 조지 5세의 서거와 형인 윈저공의 왕위 포기로 갑자기 왕좌를 물려받게 된 그는 말더듬이 장애 때문에 좌절한다. 그의 역할인 '왕'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전달하고 국민을 설득시켜야 하는 연설능력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괴짜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가 나타난다. 로그는 버티의 말더듬이 증상이 심리적인 억압과 왕위에 대한 부담에서 오고 있음을 알고 천천히 황태자의 마음을 열어준다. 버티 역시 로그와의 신뢰와 우정을 바탕으로 말더듬이 증상을 고쳐나간다.
결국 왕으로 부임한 조지 6세는 히틀러의 공습으로 불안에 빠진 전 영국민을 대상으로 명료하고 감동적인 연설을 펼친다.
이후 조지 6세는 단호하고 힘 있는 연설로 영국민들의 마음을 한데로 모아 무사히 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했고, 지금도 영국인들이 존경하는 왕으로 기억된다. 로그 역시 전시 중 국왕의 모든 연설에 동석하며 왕을 도운 공로를 세워 로열 빅토리아 훈장위원회의 대표로 임명되고 기사 훈장도 수여받는다.
결국 둘의 끈끈한 우정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전 영국을 하나로 뭉치게 한 동반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그러나 둘의 '동반성장'이 처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왕족-평민의 신분차이도 극복하기 쉽지 않았고, 평생 왕자로 산 버티는 로그의 지적에 화를 참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전문가보다 조지 6세의 증상을 호전시킨 로그였으나, 로그에게 박사학위가 없다는 주변의 시기로 둘 사이에 냉전이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동반성장'에 성공했다.
조지 6세는 자신이 돈을 지불한다고 해서 로그를 단순한 고용인이나 의사로 생각하지 않았다. 주변의 이간질에도 그의 솔루션을 믿고 따랐으며, 로그를 최고의 치료사로 인정하고 대우해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로그의 치료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조지 6세를 단지 환자가 아닌 친구로 생각하고 진심을 다해 다가가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버티에게 엄청난 의지가 있음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주며 스스로 장애를 이겨낼 수 있도록 맞춤형 솔루션으로 그를 끌어줬다. 자신의 치료기법만을 강요한 다른 치료사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 방식이 그의 성공 전략인 셈이다.
동반성장도 마찬가지다. 동반성장은 결국 대-중소기업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배가시키기 위한 파트너십 구축을 통해서 이룩될 수 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단지 '을'로 대우하지 않고 사업을 성장시키는 파트너로 대우해야 한다. 협력기업은 분명 대기업의 믿음과 공정한 대우만큼 좋은 제품과 서비스로 대기업에 일조할 것이다.
중소기업도 현재에 안주해 가격경쟁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꾸준한 연구개발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끊임없는 분석으로 거래 대기업이 필요한 솔루션을 제시해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현실은 영화 같지 않다. 버티와 라이오넬의 동반성장 성공스토리는 그저 영화 속 미화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때로는 현실이 영화보다 더 감동적이고 극적이라는 것을.
기업 간 동반성장은 처음은 어렵지만 상대를 존중하는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우리가 경쟁과 약육강식의 논리에 잊고 있었던 최소한의 신뢰와 공정한 거래문화, 파트너십 회복이 그 과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 기업의 동반성장 실천이 다른 기업의 참여를 이끌어 동반성장의 문화가 확산되는 그때쯤, 살아있는 동반성장의 영화가 대한민국의 기업문화를 바꿔놓을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그들의 영화 이후 삶에 대한 자막이 나온다. "라이오넬과 버티는 평생 친구로 남았다"
이제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이들 이야기처럼 대한민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후대에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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