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지욱기자] "은행 직원인데요. 신용정보가 유출됐습니다. 제가 경찰에 신고했으니까 내일 아침 통장, 도장 들고 은행으로 나오세요. 주변에 절대 말씀하지 마시고요."
이런 전화를 받고 밤새 끙끙 앓던 A씨는 다음날 아침 은행으로 달려갔다. 이를 발견한 것은 A씨의 부인 B씨. 왠지 찜찜한 생각에 은행으로 달려가 하소연을 시작했다.
은행에서는 남편이 보이스피싱에 속은 것 같다는 B씨의 요청에 해당 콜센터에 연결했지만 급히 나오는 바람에 신분증도 없었는데다 남편의 주민등록번호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했다. 결국 통장만 분실신고하는 쪽으로 처리했다.
그 사이 A씨는 보이스피싱으로 받은 계좌로 무려 1800만원을 입금했고 그대로 돈을 날리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 C씨도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했다. 보이스피싱 사기꾼에게 깜빡 속아넘어간 C씨는 텔레뱅킹 서비스에 가입해 집전화를 지정번호로 등록하고 범인에게 통장비밀번호와 주민등록번호, 보안카드 번호 등을 그대로 알려줬다.
지정번호로만 텔레뱅킹이 가능하나 범인은 인터넷 전화를 이용해 통신 번호를 바꿔 전산상으로 C씨의 지정번호로 1400여만원을 감쪽같이 인출해갔다.
전자금융법상 접근매체의 위,변조에 대해서는 금융기관이 책임을 지지만 C씨처럼 개인정보를 누설하면 전적으로 이용자가 책임이다. 결국 C씨는 구제받지 못했다.
◇ 보이스피싱 '아차!' 싶을땐 지체말고 '지급정지' 신청해야
이처럼 보이스피싱이 극성을 부리고,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있지만 금융기관 등에서 피해를 보상받기는 쉽지가 않다. 금융기관은 '중간자' 역할만 했을 뿐 직접적으로 사기는 본인책임에 걸려 금융기관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에 속은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B씨와 C씨 모두 중요한 권리를 잊고 있었다. 바로 '지급정지'신청이다.
은행에 계좌의 '지급정지'를 신청하면 부당이익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해당 콜센터를 통해 피해 사례가 접수되면 이후 별도의 소송을 거쳐 판결에 따라 계좌를 동결하고 그 금액에 대해 반환받을 수 있게 돼 있다.
특히 오는 9월 30일부터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 보다 간소해진다. 법원 재판 단계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지급정지 신청은 국번없이 112로 경찰청 통합센터를 이용하면 해당 금융기관 콜센터로 자동으로 연결된다. 이후 금융당국에서 두달간 신문 등을 통해 공고한 뒤에 계좌주를 소멸시켜 지급하는 방식이 된다.
만약 A씨의 배우자 B씨가 침착하게 본인이 피해자의 배우자라는 증빙을 하고 '지금정지 신청'을 정확히 요구했으면 은행에서는 지급정지 신청을 해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다. 또 C씨도 보이스피싱을 당한 이후 바로 지급정지 신청을 했다면 거액을 날리는 사기를 면할 수도 있었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국은 "보이스피싱의 경우 피해자가 직접 사기를 당한 경우기 때문에 분쟁조정을 통해 보상을 받은 사례가 없는 편"이라며 "하지만 지급정지 등을 신청할 경우 금액이 넘어간 계좌를 묶어 반환받을 수 있으므로 아차싶을 때 바로 112로 신고하라"고 조언했다.
특히 계좌로 넘어갔을 경우 5~10분이면 금액이 인출되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에는 개인정보를 알아내 카드를 발급받아 대출을 받는 등 카드론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므로 금융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도움말 주신분=금융감독원 분쟁조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