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변종' 유통업 진출, 소상공인 '생존권' 위협

입력 : 2011-09-14 오후 3:56:58
[뉴스토마토 송주연·김경훈 기자] 대기업들의 유통시장 진출과 확대로 유통업에 종사하는 영세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
 
소규모 영세업체로 출발해 대기업 반열에 오른 '대상(001680)'이 식자재 도소매업까지 진출해 지역상인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는가 하면, 기업형수퍼마켓(SSM) 규제에 발목이 잡힌 '이마트' 는 '이마트 트레이더스'로 도매업에 진출해 지역 소상공인들과 대립하고 있다.
 
이에 더해 편의점의 형태를 띈 '변종 슈퍼마켓'도 골목상권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존 제품에 신선식품을 더한 롯데슈퍼의 마켓 999, GS25 후레쉬 등의 대기업 계열 소매유통망이 포함됐다.
 
◇ 식품 대기업의 유통업 진출..중소 식자재업체 '분통'
 
지난달 29일 인천 삼산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은 '고추장 소동'으로 한때 난장판이 됐다.
 
'청정원' 브랜드로 잘 알려진 식품제조 기업 '대상'이 대형마트를 인수해 식자재 도매업에 진출하려 하자, 이에 반발한 중소상인들이 고추장 통을 집어 던지며 항의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대상이 100% 지분을 소유한 다물FS는 자회사 중부식자재를 통해 '베스트코'라는 대형마트를 오픈 예정이었으나, 인천시 도매유통연합회가 이보다 앞선 지난달 18일 중소기업중앙회에 사업조정 신청을 냈다.
 
사업조정 신청으로 '베스트코'는 현재 개점을 미룬 채, 공산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품을 매장에서 거둬들인 상태다.
 
다물FS는 자회사 '청정물류시스템'을 통해 대전에서도 식자재 도매업을 벌이고 있다.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는 '청정물류시스템'은 도매업자들에 대한 할인판매는 물론, 소매로 구매하는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평균 판매가격보다 10% 가량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에서 10년째 식자재 도매업에 종사하고 있는 김기남 서해식품 사장은 "대기업이 인천에만 식자재유통업을 5곳 더 늘리겠다고 하는데, 그걸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냐"며 "대기업이 시장권을 형성한다면 우리같은 소상공인은 다 죽는다"고 토로했다.
 
임병재 중소기업청 소상공인정책과 팀장은 "사업조정 신청을 낸 인천 도매유통연합회 측과 다물FS측 모두 적극적으로 협상에 응하고 있어 한 달 안으로 합의에 이를 것"으로 기대했다.
 
정재식 인천대책위 사무국장은 "사업조정이 긍정적으로 마무리 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사업조정으로 대형마트의 영업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큰 실효성을 얻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이마트, '창고형 도매업'으로 골목상권 장악 중
 
도매업에 종사하는 중소상인들은 갖가지 수법으로 골목상권에 뛰어들고 있는 유통 대기업들에게 위협을 느끼고 있다.
 
지난 6월30일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전통시장에서 SSM 입점이 1km까지 제한되는 등 SSM 규제가 강화되자 대기업 유통업체들은 창고형 매장을 갖추고 도매업에 진출하거나 변종 SSM 형태로 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마트는 경기도 용인에 '이마트 트레이더스' 개점을 시작으로 인천 송림, 대전 월평점을 연달아 오픈했다.
 
슈퍼, 식당, 병원 및 학교 등에 식자재, 생활용품을 도매로 판매하는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기존 이마트 가격보다 5~10%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인천에서 식품 도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문태윤 몽고식품 인천영업소 대표는 "기존 이마트나 롯데마트, 홈플러스 같은 할인점이 있을 때는 어려워도 나름대로 공생하며 영업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오픈하면서 거래하던 점포마저 트레이더스에서 물건을 가져다 쓰는 곳이 생겨 매출이 30% 가량 감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가격"이라며 "중소상인들이 적정 마진을 남길 수 없는 구조로 제품이 판매돼 소상공인들이 하나 둘 사라지게 되면 당장은 소비자들이 낮은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지만 이후 값싸게 팔던 대기업들이 가격을 올리면 결국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 롯데슈퍼의 '변종 SSM', 일반 슈퍼마켓 위협
 
외형상 편의점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판매하는 품목이나 영업 방식은 기존 슈퍼마켓과 차이가 없는 '변종 SSM'도 중소상인들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가장 많은 SSM을 운영하는 롯데슈퍼는 균일가형 편의점 '마켓 999'를 통해 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본사 직영으로 운영되는 '마켓 999'는 기존 슈퍼마켓이 판매하는 신선식품을 포함해 2500여 가지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마켓 999'는 2009년 6월에 개장해 지난해 말 기준 17개 매장이 문을 열었고, 올해 9월 현재 서울과 수도권에 총 26개 매장이 영업 중이다.
 
'마켓 999'는 앞으로 신도시 택지개발 지구 등을 중심으로 출점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국내 SSM 매장, 2009년 610개 → 2010년 866개
  
중소기업청이 조사한 기간별 SSM 현황에 따르면, 국내 SSM 매장은 가맹점을 제외하고 2009년 총 610개에서 지난해 866개로 256개 늘었고, 지난달까지 총 940개로 확산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8월 기준 업체별 SSM 매장은 롯데슈퍼 280곳, 홈플러스익스프레스 236곳, GS슈퍼 204곳, 이마트 19곳 등으로 나타났다.
 
정재식 소상공인 살리기 인천대책위 사무국장은 "골목상권은 변형된 SSM으로 인해 중소상인들의 피해는 여전히 늘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유통시장 전체를 중소상인들의 적합업종으로 지정해서 제도적으로 대기업의 진출을 막지 않는 한 중소상인들의 피해는 여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토마토 송주연 기자 sjy292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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