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최근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가 벌어진 것은 MB정부 들어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의 오랜 갈등으로 인한 의사소통 부재가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5일 사상 초유의 전국적 정전사태에 대해서도 지경부와 한전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23일 지식경제부가 작성한 '지경부-한국전력 간 갈등사례' 보고서를 보면 지난 2009년부터 지경부와
한국전력(015760)이 여러 사안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 온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 2009년 발전회사 통합 문제로 갈등 계속
2001년 4월 전력산업구조개편 이전까지는 한전이 전력 수급 계획 수립과 설비 건설, 전력 생산과 공급 등을 모두 담당하는 독점 체제였다.
하지만 경쟁을 통한 효율성 향상을 위해 한전에서 발전사 6곳이 자회사로 독립했다. 2009년 한전은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법률' 시한 만료와 연계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해외 진출을 위해 분할된 발전사를 한전으로 재통합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발전사를 민영화하지 않고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며 이에 반대했다.
발전회사 분할 이후 한전과 발전회사와의 관계를 가지고도 신경전을 벌였다.
한전은 발전사 경영효율과 경영 활동 지원 명목으로 정기 감사 등에 대한 개입을 요구했지만, 지경부는 발전사의 자율적이고 책임있는 경영체제를 역행할 수 있다고 맞선 것이다.
또 분산형 전원확대를 통한 발전소 입지난 해소와 에너지 효율 제고 등을 통해 전력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2004년 7월부터 구역전기사업제도가 도입됐다.
한전은 기후 여건과 원료가격, 투자비 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 적합지 않은 제도라며 구역전기제도 도입시점부터 지속적으로 반대했다.
반면 지경부는 에너지효율향상 차원에서 제도를 도입하고 LNG 가격 상승 등으로 경영이 어려운 구역전기사업제도의 개선을 추진하기도 했다.
◇ 지경부, 한전 발전사 건설계획 '월권'이라며 밥그릇 싸움도
지경부가 한전에 '월권'이라며 눈에 불을 켠 일도 있었다.
2008년12월에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발전사의 신규 발전소 건설계획의 조정 과정에서, 발전사의 첨두설비(가스복합)의 건설을 억제하고 석탄·원자력의 조기 준공 등을 자회사에 요구했다.
정부의 전력수급계획에 반영된 설비계획을 한전이 직접 조정하거나 발전사의 건설 계획에 대해 간섭하는 것을 지경부가 지적하고 나섰다.
전력 구매자인 한전이 비용절감을 위해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할 때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발전사 계획을 직접 조정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것이다.
◇ 스마트그리드 로드맵·제주 실증단지 계획 공동추진하면서도 '으르렁'
또 2009년에 지경부와 한전이 스마트그리드 국가 로드맵 수립과 제주 실증단지 계획 수립을 위해 공동 추진했었다.
당시 한전은 전력산업 구조와 기존 구조개편 경험에 따라 스마트그리드가 소비자 선택확대 등을 통한 판매시장 개방에 대해 우려했다.
이에 지경부는 "한전이 스마트그리드 구축 사업이 전력망에 국한된 사업이라며 긍정적인 효과보다 한전에 미칠 잠재적인 위해 요인을 해소하는데 촉각을 곤두세웠다"고 밝혔다.
스마트그리드 사업 전력망뿐 아니라 전기차와 빌딩, 가전 등 광범위한 범위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한전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지경부는 촉구했다.
아울러 한전과 지경부는 한전을 사무국으로 하는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부지 선정과 관련해 협의회를 구성한 바 있다.
협의회의 심사위원 전원이 제주도를 최적의 부지로 평가했으나, 한전은 사장보고 직후 태안에 구축해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실무 협의회를 다시 열어 제주 계통이 크게 취약하지 않으며 취약점 보강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제주로 확정지었다.
지경부는 "실증단지 부지를 제주로 선정한 이후 한전에 전력 계통 보강책을 요구했지만 한전의 반응이 미온적이었다"며 "제주 전력계통이 취약하다는 것은 처음부터 억지 주장이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 김쌍수 전 사장, 정부에 전기요금 현실화 요청..정부 거절
김쌍수 전 한전 사장이 퇴임을 며칠 앞두고 돌연 사의를 표명해 주변을 놀래켰다.
후임 사장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인데다, 후임이 결정되지 않을 경우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임기가 끝나도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공기업 관례다.
이처럼 갑작스레 김 전 사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본인의 뜻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정부에 대한 원망과 명예훼손 때문이다.
한전 소액주주들이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아 경영상태가 나빠졌다며 김 사장을 상대로 2조8000억원의 소송을 제기했다.
또 김 전 사장은 재임기간 중 석유·천연가스의 가격이 오르면 전기요금이 따라서 오르는 연료비 연동제와 전기요금 현실화를 정부에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않은 것에도 불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쌍수 전 한전사장이 퇴임한 후 김중겸 신임 사장이 내정된 가운데 지난 15일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한전이 9월 늦더위로 인해 전력 사용량이 폭주할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전력수요 예측을 잘못한 것이다.
전력거래소에서는 비상 상황과 예비 전력량을 지경부에 보고했다고 하지만 지경부에서는 전력거래소가 허위보고를 했다며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정전이 발생해 긴박했던 당일 염명천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자리를 비우고 외부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지경부 직원들이 산하공공기관으로부터 룸살롱 접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산화 연구기관들도 '돈잔치'를 벌이는 등 지경부 산하 공기업들의 전반적인 기강 해이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뉴스토마토 임애신 기자 vamo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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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애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