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농협 신경분리 '조바심'이 일 그르친다

준비 안 된 개편 '매몰비용'만 줄줄 샐 수도
자본금 스스로 마련해 자생조직 되야

입력 : 2012-01-17 오후 4:19:29
[뉴스토마토 황인표기자] 서울 합정동 절두산 옆에 있는 본지 기자가 소속해 있는 토마토TV 사옥 옥상에 올라가면 양화대교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전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한강에서 서해까지 뱃길을 만든다며 교각확장 공사에 415억원을 쓴 다리다. 공사 관계로 ‘ㄷ’자로 휘어진 다리 때문에 운전자들을 조바심을 내며 차를 몰아야 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박원순 시장이 서해뱃길 사업을 반대하면서 공사는 무의미해졌다. 그럼에도 매몰비용, 즉 그동안 투입한 비용을 감안해 공사 중단 보다는 완료가 낫다는 판단에 어쩔 수 없이 75억원의 공사비가 더 들어가게 됐다. 결국 강물에 490억원이나 흘려보낸 셈이다.
 
‘불도저’식으로 진행되는 농협 신용ㆍ경제 부문 역시 마찬가지다. 이대로 진행됐다가는 매몰비용이 커져 나중에 더 큰 돈을 들여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농협이 ‘농민을 위한 자율적ㆍ자생적 조직’으로 거듭나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자본금이 부족하다. 부족한 12조원의 자금 중 6조원만 농협이 자체조달하고 나머지는 5조원만 정부가 간접 지원하기로 해 결국 1조원이 부족하다.
 
국민의 혈세인 세금으로 수 조원을 농협에 지원하는 것이 옳은가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다. 시간을 두고 농협 스스로 돈을 벌어 자체 자본금을 확충해야 정부와 정치권 눈치를 보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진다.
 
전산시스템에 대한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농협하면 ‘전산 사고’가 떠오를 정도다. 지난해 4월 최악의 전산망 마비 이후 5000억원을 투입했다지만 작년에만 4차례나 크고 작은 전산사고가 있었고 새해가 밝자마자 3일에도 체크카드 업무가 마비됐다.
 
농협 측은 “현재 전산인력들이 신경 분리에 맞춘 전산망 사업에 투입돼 실수가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농협 내부 문건에 따르면 신경분리 출범일인 오는 3월2일 이전까지 전산시스템 구축은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간에 쫓겨 무리하게 전산 개발에 나섰다가 신경분리 출범 후 나중에 더 큰 혼란이 오면 그때도 ‘북한 해킹’ 탓을 하며 더 많은 돈을 쓰겠다고 나설 것인가.
 
현재 금융감독원은 농협 전산망의 문제점 등을 분석해 오는 19일 주관부서인 농림수산식품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신경분리 이전까지 물리적으로 전산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가능한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
 
다행히 정치권은 농협 신경분리 유예를 놓고 아직까지 저울질을 계속 하고 있다. 새로 선출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등은 농협의 사업 분리를 연기하겠다는 계획이며, 국회 역시 2월까지 이 문제를 충분히 논의키로 했다.
 
치적에 급급해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식의 사업 추진은 곤란하다. 490억원의 다리도 아닌, 5조원의 세금이 투입되는 조직 개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정치권에 이어 농협 스스로 자정의 움직임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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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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