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신용카드 영수증 한 장에 고객 카드번호 16자리와 유효기간이 그대로 노출되는 등 개인 신용정보가 줄줄 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카드사와 특약을 맺은 가맹점의 경우 카드번호와 유효기간만으로도 결제가 가능해 이미 이를 악용한 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카드사는 물론 금융당국도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책임을 떠 넘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당국 행정지도 불구 카드번호·유효기간 모두 노출
20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지난 2010년 하반기 카드 영수증에 기재된 유효기간을 없애고 카드번호 일부를 삭제도록 각 카드사에 행정지도를 내렸다.
고객 카드번호 16자리와 유효기간을 알면 범죄에 악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당국의 행정지도로 대부분의 가맹점이 유효기간과 카드번호 일부를 삭제하고 있는 반면, 한 장의 영수증에 카드번호와 유효기간이 그대로 기록되고 있는 가맹점도 있었다.
실제로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위치한 O식당에서 발급한 영수증(사진)에는 고객 카드번호 16자리와 유효기간이 선명하게 기록돼 있었다.
금융당국국의 행정지도에도 일부 카드번호와 유효기간을 삭제하지 않고 버젓이 영수증을 발급하고 있는 셈이다.
행정지도가 권력적·법적 행위에 의하지 않고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규제·유도의 수단으로 협력을 구하는 수준이라는 점도 허술한 고객번호와 유효기간 관리의 한 요인으로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객 신용정보 노출로 인한 금융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도 금감원과 카드사는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카드번호가 모두 공개되는 영수증이 아직도 있냐"고 되물으며 "금감원은 카드사와 달리 밴(VAN)사에 대한 감독권이 없다. 현실적으로 카드사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라고 발뺌했다.
밴사는 카드사와 가맹점 사이에서 중계역할을 하는 사업자를 말한다.
카드영수증에 고객 정보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카드사도 마찬가지였고, 카드사는 밴사에 책임을 돌렸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영수증에 기재되는 카드번호 16개 가운데 한 구간은 지워야 한다"며 "모두 공개하고 있는 곳은 없을 것"이라고 부정했다.
그는 이어 "만약 카드 번호와 유효기간이 모두 노출되면 이를 방치한 밴사 책임"이라고 밴사로 '공'을 넘겼다.
다른 카드사 관계자 역시 "카드 번호가 모두 공개되는 영수증이 있는 줄 몰랐다"며 "밴사가 어디인지 알려질 경우엔 카드사에서는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가맹점주, 손님 영수증 악용할 수 있어
문제는 노출된 카드번호와 유효기간은 범죄에 악용될 수 있어 고객피해로 이어질 수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카드번호와 유효기간을 알면 카드사와 특약을 맺은 가맹점에서는 카드가 없어도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기업 편의성 차원에서 보험사, 홈쇼핑 등 카드사와 특약을 맺은 가맹점은 해당기업이 책임지는 조건으로 고객의 카드번호와 유효기간만으로도 결제할 수 있다.
이미 과거에 몇 장의 카드영수증을 조합해 카드번호와 유효기간을 파악한 범죄자가 홈쇼핑을 통해 결제한 사례도 있었다.
가맹점 주인을 통한 범죄도 가능하다.
평소 해외결제를 자주 이용하는 회사원 박 모씨(33)는 "해외 사이트 경우 카드번호, 유효기간, CVC번호 세자리만 알면 결제되는 것도 많다"며 "영수증 두 장 중 한 장은 가맹점 주인이 소지하기 때문에 결제할 때 손님카드 뒷면에 있는 CVC를 외우면 충분히 범죄에 사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CVC는 카드 유효성 검사코드로 카드 뒷면의 숫자 가운데 마지막 3자리 수를 말한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사이트는 보완이 미숙하기 때문에 카드번호, 유효기간, CVC값만으로 결제가 이뤄진다"며 "이 중 국내 카드 영수증에 카드번호와 유효기간이 노출될 경우 부정사용 가능성이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