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지기자]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가 유럽연합(EU)과 약속한 재정적자 목표치를 지키지 못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EU 정상회의에서 각국의 재정운용을 엄격하게 규제하기로 하고 신재정협약에 서명한 지 채 몇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나온 발언이다.
◇EU 25개국, 신재정협약 서명
2일(현지시간) 영국과 체코를 제외한 25개국 정상들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나 신재정협약에 서명했다. 영국은 자국 금융산업 보호를 이유로 새 협약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고, 체코는 법적인 문제를 거론하며 협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 협약은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초과하고, 국가 부채가 GDP의 60%를 넘어서면 EU 차원의 제재가 자동적으로 가해지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재정운용을 엄격히 규제해 유럽 재정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다.
이번 신재정협약에 대해 헤르만 반롬푀의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드디어 유럽엽합은 경제적, 통화적 통합을 이뤄 두 다리로 걸어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딴소리하는 스페인..신재정협약 신뢰도 '흔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라호이 총리는 정상회담을 마친 후 일방적으로 "2012 재정적자 목표 달성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재정적자 목표를 GDP 대비 4.4%에서 5.8%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페인 전임 정권은 당초 2011년 재정적자 비율은 GDP의 6%, 2012년엔 4.4%로 낮추고 2013년엔 EU의 기준치인 3% 밑으로 낮추겠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새로운 총리에 취임한 마리아노 라호이는 이번에 다른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라호이 총리의 이와 같은 발언에 유럽 정상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EU 관계자는 "라호이 총리는 신재정협약이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라호이 총리는 이번 재정적자 목표치 상향 조정이 세계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라호이 총리가 올해 재정적자 목표는 지키지 못하겠다고 했지만 오는 2013년 당초 목표했던 재정적자 3%는 반드시 달성할 것을 시장에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차갑다. 대다수의 시장 전문가들은 스페인이 2013년까지 재정적자를 EU과 약속한 비율까지 낮추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은 스페인과 같이 신재정협약에서 합의한 기준점에서 예외를 적용받는 국가들이 늘어나면, 신재정협약의 신뢰성도, 강제성도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감을 드러내고 있다.
◇스페인 재정목표치 상향은 예상된 결과
스페인의 재정적자 예상 규모 확대 선언은 예상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앞서 크리스토발 몬토로 스페인 예산장관은 "스페인이 겪고 있는 경기침체를 감안해 EU와 당초 약속한 2012년 재정적자 비율 목표치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4.4% 라는 당초 정한 재정적자 목표는 스페인 경제가 2.3%의 경제 성장률을 달성할 것으로 전제로 작성된 것"이라며 "스페인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경제 상황에 따른 목표치 설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침체가 심화될 경우, 세금을 인상하고 지출을 줄여도 목표치 달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스페인 중앙은행은 올해 스페인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 1.5%를 기록할 것이란 보고서를 내놨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스페인 경제 성장률을 -1.7%로 제시했다.
루이스 가리카노 런던정경대(LSE) 경제전략학부 교수는 "브뤼셀이 각국 정부의 재정적자 목표치를 제시함에 있어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전했다.
그는 "매우 급격한 재정목표치를 제시하는 것만이 위기 해법은 아닐 것"이라며 "유로존이 감축에만 집중할 경우에는 경제 성장률 하락, 재정문제 악화 등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