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종호기자] 정치권의 '복지'공약에 정부가 "재정 위험"을 경고하며, 메니페스토 측면에서 복지공약을 평가하겠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복지'에 대한 로드맵 조차 만들지 못한 정부가 "돈"을 이유로 "복지"에 난색으로 표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현 정부는 의무지출분의 자연증가를 포함한 복지예산을 역대 최고치라며 매년 자랑하고 있다. 정부의 복지 예산 허점을 짚고, 구체적인 복지 재원 방안과 함께 "국민이 직접 설계"하는 복지의 가능성을 3회에 걸쳐 진단한다. [편집자주]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복지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 조차 "복지"가 대세라는 정치권의 압박에 떠밀려 가는 모양새다. 연초부터 정부가 발표한 '무상보육'이 대표적이다. 지난 1월 정부는 올해부터 만 5세아동에게 도입되는 누리과정을 내년부터 만 3~4세 아동에게도 확대하는 내용의 '3~4세 누리과정 도입 계획안'을 발표했다. 이 같은 정부 안에 올해부터 도입되는 만 5세 누리과정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순차적인 정책 도입이 필요한데, 대선과 총선으르 앞두고 "표"를 의식해 내년에나 도입될 3~4세 누리과정을 서둘러 발표했다는 비판이다.
이런 정부가 최근에는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선심성 복지공약을 무차별하게 내놓고 있다"며 "복지 태스크포스(TF) 팀을 구성해 정치권의 무분별한 복지 포퓰리즘을 우려한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지난 4년간 부자감세로 83조원의 세금을 깍고, 4대강 사업으로 20조원 넘는 예산을 낭비한 현 정부로서는 복지에 대한 "철학"과 "원칙"이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복지공약에 대한 정치권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현 정부의 경제공약인 '747공약'은 개발연대 논리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지금의 '복지공약'은 경제적 약자에게 많은 파이를 나주자는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면서도 "정치권력 획득을 위해 실현 가능성이 확실치 않은 공약을 과대 포장하고 있는 것은 똑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복지재정을 어떻게 확보하겠다는 것인지 신뢰할 만한 방안이 없다"며 "이와 같은 경우 복지국가를 내세운 후보가 당선돼도 실패하거나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세금낼테니..복지확대해라"
지난달 발족한 복지국가시민모임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내만복)"의 경우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내만복'은 창립발기인 참여 제안서를 통해 "여전히 복지국가를 반대하는 세력이 버티고 있고, 복지국가를 위한 구체적인 재정대안을 제시하며 국민적 참여를 모아내는 활동은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올해 정치 일정을 감안할 때, 어느 때보다도 시민·노동자가 주체적으로 나서는 복지국가운동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내만복'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은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내만복'같은 시민운동을 통해 국민들이 직접 세금을 내고 재정을 충당할 수 있는 힘을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재정을 충당할 수 있는 핵심은 "증세"다. 오 실장은 "복지에 대한 요구가 증세담론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과거엔 세금폭탄이라는 프레임이 강했지만 지난 지방선거와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보면 국민들의 의식변화가 확인된다"고 진단했다.
실제 지난 2010년 <한겨레>가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조사한 '국민의 복지 및 사회의식' 조사 결과는 전체 응답자의 72.1%는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모든 국민에게 복지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이어 지난 1월 <서울경제신문>과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에도 응답자의 78%가 '복지 확대'를 원했다. 1년여 만에 증세를 하더라도 복지확대가 필요하다는 응답자가 또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증세에 대한 국민 반감에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윤정화 월드리서치 연구원은 "세금을 더 내고, 복지혜택을 늘려야 한다는 질문에 응답자는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하지만 실제 행동은 반대"라고 지적한다.
전 교수도 "세금을 내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실제로 세금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며 "재원 확보는 세금 낼 능력이 있느냐에 따라 실효성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소득자의 소득세 실효세율이 낮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총소득 대비 실제 부담한 소득세액 비율인 실효세율을 미국과 비교하면 미국은 소득상위 20%의 고소득자의 소득세 실효세율은 14.1% 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5.9%에 머물러 있다.
결국 복지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증세가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전 교수는 "복지정책의 실현가능성은 세금을 누구한테 얼마나 더 걷을 수 있을 것이냐"라며 "각 당에서 소득세, 증세 누진율 강화, 부유세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세금을 올리겠다는 정부과 정당은 언제나 불행한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
◇복지 재원은 "조세정의"로부터..'복지담론'에서 '방법'으로
더구나 '조세정의'가 바로서지 않으면 "세금을 내겠다"는 여론은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의견도 따른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장은 "대한민국의 현실은 내가 실제로 버는 것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낸다는 의식이 크다"며 "세금을 내도 우리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특권·기득권층에 집중적으로 혜택이 많이 간다고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때문에 제대로 과세할 수 있는 조세 기반을 확충하고 세금을 걷어야 한다"며 "소득을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소득조사청(제2국세청)'같은 기관을 세워 모든 과세자료를 모아서 정확하게 판단하고, 소득에 비례해 과세하면 내 몫만큼 낸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선 소장은 "부동산에서 걷어야 할 세금을 수십조원씩 안걷고, 양도소득세, 임대 소득세는 거의 걷지도 않고 있다"며 "주식 양도차익과세와 같은 자본이익에 대한 과세를 크게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도 지난 5일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의 납세자들은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 복지 하겠다'는 정치인들의 말에 속지 않아야 한다"며 "복지 재원을 늘리려 증세를 거론하기에 앞서 ▲공공부분 투명성을 높여 예산낭비를 막고 ▲토건예산을 줄이고 ▲유류세 인하 등 높은 간접세 비중을 줄이고 ▲국공채 남발을 막을 제도적 장치 ▲ 공기업 채무 중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잠재적 부채를 포함한 국가부채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증세를 통한 복지재원 확보와 함께 정부의 인식전환도 요구된다.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2010년 GDP(1172.8조원)대비 국세감면액(30.1조원)비율이 2.57%로 확인된다. 해당 비율을 2002년 2.04%수준으로 낮출 경우 국세감면액은 23조9000억원이 돼 6조2000억원의 세수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지난 5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제46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소수의 납세자가 세금의 대부분을 부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세율인상은 세 부담의 편중만 심화시킬 것"이라며 "세율은 가급적이면 낮게, 조세제도는 되도록 단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박 장관의 주장은 90년대 중반 이전 기업의 한계투자 성향이 0.9이상으로 나타나, 정부의 기업조세지원정책이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기여해 온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와 기업의 한계투자 성향이 0.3수준으로 떨어져 정부의 기업조세지원정책의 경제적 효과가 복지지출 정책의 경제적 효과보다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한계투자성향이 0.3이라는 것은 기업소득이 1만원 증가할 때 투자가 3000원 늘었다는 것으로 이 경우 1만원을 저소득층에 지원해 1만원에 가까운 소비를 유발하는 것이 경제적 효과가 더 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정부는 복지를 희생해 기업지원을 늘렸던 7,80년대식 조세재정정책에서 벗어나, 복지를 성장의 주요 요소로 인식하는 '성장-복지 선순환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