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 외국인 자본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갔다가 앨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다는 말이 있다. 해외 자본이 유입될 때는 점진적으로 증가하지만 경제침체 또는 위기가 발생하면 일시에 대규모 청산이 이뤄진다는 얘기다.
특히, 우리나라는 소규모 개방 경제로 외국인 자본의 직접적인 통제가 어렵고 해외 충격에 매우 취약하기때문에 펀더멘털이 괜찮더라도 외화유동성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가 이를 방증한다.
정대영 한국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23일 "외국인 자본은 양날의 칼과 같다"며 "낮은 금리로 조달할 수 있는 반면, 급격한 유동성 쏠림은 경제 펀더멘털이 견조한 국가의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파탄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와 당국이 주식과 채권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 자본 유입 급증을 마냥 좋아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장 단기 상관없이 무조건 자금을 회수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며 "그럴 바에는 차라리 들어오지 않는 게 낫다"고 털어놨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뤄진 국제 금융거래가 대부분 저금리 통화를 빌려 고금리 통화에 투자하는 캐리거래라는 점도 부담이다. 국내 금융시장 역시 2009년 이후 급증한 외국인 채권투자 중 펀더멘털에 따른 투자 외에 캐리투자 목적으로 들어온 자금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채권시장에서 실질투자규모를 가늠하게 해주는 외국인 순투자 규모만 봐도 알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 순매수 규모는 2009년에서 2011년까지 53조6000억원, 63조1000억원 41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외국인 순투자 규모는 2009년 18조5000억원, 2010년 16조9000억원, 2011년 9조8000억원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특히 미국과 유럽 재정위기가 부각되기 시작한 지난해 9월에는 외국인 채권순투자가 마이너스(-)25억원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경제실장도 "캐리투자는 대표적인 단기투자방식으로 자본의 변동성을 높인다"며 "이는 자본 유입에 따른 자산가격 급등과 급락이라는 소위 과열-붕괴 싸이클이 발생해 경제 전반의 안전성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차익거래 목적으로 유입되는 외국인 자본유출입 통제하기 위해 외환건전성 부담금, 선물환규제, 채권비과세 폐지 등 3대 조치를 내놨다. 전문가들도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선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이미 우리는 두 차례의 위기를 통해 외국인 자본의 혜택과 극단적인 폐해를 경험했다"며 "향후 외국인투자 유출에 따른 부정적효과를 최소화하는 정책이 추가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실장도 "우리는 외환위기를 겪었다는 낙인 효과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 이를 고려해 변동성 억제를 위한 더 많은 정책과 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체질개선을 위해 금융시장규모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금융자유화는 변동성을 높인다는 분석결과가 나온만큼 자본 변동성 억제를 위해서는 금융자유화 등에 신중해야 한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