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산업 이대로 좋은가)②외국기업 IPO 가뭄에 '한숨'

입력 : 2012-04-03 오후 3:00:00
[뉴스토마토 김용훈기자] 국내 자본시장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다. 자본시장법은 2008년 4월 시행령이 입법예고된 시점을 감안하면 올해로 5살이다. 그동안 금융투자업계는 규제완화를 바탕으로 시장규모가 커지는 등 양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자본시장법을 만들며 구상했던 미래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업계의 발전은 정체되고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증권산업의 현주소와 개선점에 대해 5회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주]
 
증권사들의 새로운 돌파구로 인식되던 외국기업 기업공개(IPO) 주관업무가 개점 휴업 상태다.
 
중국고섬(950070)이 은행잔고 불일치에 따른 거래정지로 인해 사실상 상장폐지가 된 이후 국내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는 꽁꽁 얼어붙었다.
 
게다가 한국에선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국내 증시 입성을 준비하던 외국기업들마저 상장 일정을 잇따라 전면 백지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국기업 IPO 주관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던 중소형사들은 더욱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 국내 IPO 대형사 독식..'트랙 레코드'가 주요 변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국내 증시의 IPO 주관업무는 몇몇 대형사들이 점유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지난해 우리투자증권(005940)이 11건의 IPO를 성사시키며 9132억원을 벌어들였고, 한국투자증권이 16건으로 6854억원을 벌었다. 이어 대우증권(006800) (8건·5835억원), 미래에셋증권(037620) (5건·5819억원), 현대증권(003450) (6건·3997억원) 등이다.
 
국내 기업들이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는 기준이 트랙 레코드(Track Record)에 편중되기 때문이다. 즉, 그간의 상장 주관 경험이 얼마나 있는지 여부가 주관사 선정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대우증권, 우리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이 국내 기업 상장 주관업무를 싹쓸이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는 최근 몇 년간의 대어급 IPO만 봐도 쉽게 드러난다.
 
4조8887억원으로 국내 증시 개장 이후 가장 규모가 컸던 삼성생명(032830) IPO 대표주관사는 한국투자증권이 맡았고, 삼성생명 이후 최대 규모인 산은금융지주 IPO도 대형사와 외국계가 독식했다.
 
이처럼 트랙 레코드가 IPO 주관사 선정의 주요 기준으로 작용하다보니 수수료를 거의 받지 않고 상장 주관사를 수임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 2009년 공기업인 GKL(114090)을 상장시킨 미래에셋증권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미래에셋증권은 GKL 상장수수료로 총 발행금액의 0.01%에 불과한 수수료(2000만원)만 받았다. 수수료보단 공기업 상장 주관 경험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중소형사 "해외기업이 답"이라고 했지만..
 
대형사에 비해 뒤늦게 출발선에 동참한 중소형사는 답답할 수 밖에 없다.
 
실제 NH투자증권 IB임원은 "경험 많은 우수한 팀원을 영입했지만 증권사 명의의 트랙 레코드가 부족해 일감 찾기가 어렵다"며 "하지만 각 개별 팀원들의 트랙 레코드는 결코 대형사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중소형 증권사들이 해외기업에 눈을 돌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국내 기업 IPO를 따내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대형 증권사들과 같은 출발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는 해외기업 IPO에 나선 것이다.
 
싱가포르 기업인 UMS홀딩스 상장 주관사를 맡았던 KB투자증권의 IB임원은 계약 당시 "국내와 달리 외국기업은 KB금융의 일원인 KB투자증권을 트랙레코드가 전무한 소형사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지금까지 국내 증시에 상장한 해외기업의 사례를 보면 이는 분명하게 입증된다. 국내 증시에 상장돼 거래되고 있는 해외기업은 모두 17개로 이 중 앞서 언급한 빅5 증권사가 아닌 중소형사가 주관을 맡은 기업이 10개(58.82%)에 달한다.
 
            
 
 
주관사를 따내는 것도 용이하지만 수수료 역시 섭섭하지 않다는 점이 더 중요한 이유다. 실제 해외기업 IPO의 수수료는 국내 기업의 2배에 육박한다.
 
2010년 기준 전체 국내기업의 상장 주관 수수료는 0.30%를 기록한데 비해 외국기업 수수료는 0.56%에 달했다.
 
200억원 규모 기업의 IPO를 단독 주관한다고 가정할 때, 국내기업의 경우 5억원 대의 주관수수료를 받지만 해외기업은 11억원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한국거래소의 해외기업 유치 의지도 중소형 증권사의 해외기업 IPO 확대 전략를 부추겼다. 2010년 12월 김봉수 이사장은 해외기업 유치를 위한 해법으로 2차 상장을 제시했다.
 
앞서 상장한 중국기업이 중국 상법 상 제약으로 '바지사장' 논란에 휩싸이자 해외 증시에 이미 상장된 세계 100대 기업을 2차 상장 방식으로 유치하는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 외국기업 IPO 물 건너 갔나? 잇따라 상장 철회
 
하지만 현재 상황은 2차 상장 '봇물'을 기대했던 것과 정반대의 상황에 처했다.
 
세계 100대 기업을 유치하겠다던 거래소 발표가 떨어지기 무섭게 2차 상장형태로 국내 증시에 데뷔했던 중국고섬이 국내 증시에서 거래정지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국내 증시에 상장했던 중국고섬은 상장한지 2개월여 만에 거래가 정지됐다. 회계 장부에서 오차가 발생하면서 싱가포르 증시에서부터 거래가 정지됐고, 결국 국내 투자자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이후 '차이나 디스카운트'는 더욱 심해졌고, 일본기업 네프로아이티의 최대주주가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청약자금을 횡령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해외기업에 대한 불신감을 더욱 골이 깊어졌다.
 
결국 금융당국은 국내 증시 상장을 준비하는 외국기업에 더욱 철저한 심사를 진행하게 됐고, 외국기업은 대만이나 홍콩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올해 첫 상장 외국기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던 차이나그린피앤피가 대표적인 사례다. 금감원은 작년 11월 이 회사가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반려하면서 석달 후 2011년 회계연도 재무재표를 요구했다.
 
주관사인 신한금융투자 IB팀 관계자는 "한국시장에서 매겨지는 주가수익비율(PER)은 홍콩, 대만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이유로 밝혔다. 까다로운 규제와 차이나 디스카운트를 감안한다면 굳이 한국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는 차이나그린피앤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해 중국고섬 이후 외국기업 9곳이 상장예비심사 단계에서 국내 증시 상장을 포기하거나 예심 통과 이후 공모를 취소했다.
 
           
 
이런 분위기는 당장 쉽게 바뀌기 어려울 것이란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 국정감사 당시 중국고섬이 도마 위에 오른 만큼 거래소는 외국기업의 국내 상장 관련 투자자 보호 강화방안을 시행해야 한다.
 
회계투명성 제고를 위해 외국기업 내부회계관리 체제를 구축하고 외부감사인의 내부회계 관련 검토의견을 의무적으로 제출토록 하겠다는 것이 구체적인 방안이다. 또 주관사가 공모주식의 약 10%를 투자하고 6개월간 보호예수하는 방안도 시행된다.
 
규제가 시행되면 중소형사로선 외국기업 IPO에 나서기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국내 증권사 내 외국기업 IPO를 전문으로 하는 인력들이 벤처 캐피탈 전문업체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다.
 
실제 국내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기업 IPO를 전담하는 해외 IPO팀을 보유한 신한금융투자의 경우 지난해 1명이 이탈한 데 이어 올해에도 2명이 팀에서 빠져나왔다.
 
팀 인원이 15명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약 20%의 인력이 유출된 셈이다.
 
퇴사한 한 직원은 "부정적인 투자심리도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라며 "게다가 규제도 강화되고 있어 외국기업의 국내증시 상장 유치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고 퇴사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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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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