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거기는 100% 개인사업자에요. 관련된 서류만 14개씩 받아서 확인했어요. 뭐, 대기업이 간판만 바꿨든, 명의만 바꿨든 어쨌든 개인소유 점포니까 영업해야죠.”
최근 논란을 양산하고 있는 일부 대기업들의 도매 식자재시장 ‘꼼수’ 진출에 대해 중소기업청 핵심관계자가 맺은 결론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영 수상하다. 비슷한 일들이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늬는
대상(001680)이 아니라 ‘달인식자재’나 ‘배추벌레 식자재’고, 소유주도 대상 관계자가 아니라 대상 관계자의 친척이나 잘 아는 ‘사장님‘이다. 대상과는 아무런 관계 없는 개인사업자들이 대상 소유의 주차장 부지를 무료로 사용하거나 터무니없이 낮은 임대료에 영업한다.
냄새가 풀풀 나는 실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중기청 측의 입장은 그래도 늘 한결같다. “확인해봤지만 법적으로 엄연한 개인사업자”라는 것이다.
중기청은 지역시장에 들어서는 마트가 대기업의 자본인지, 개인 사업자인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낭비가 발생한다며 본질적인 해결을 미루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업자의 형태가 아니라, 시장균형이 파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도소매유통업은 개인사업자가 전체의 90% 이상인 전형적인 생계형 개인사업자들의 영역으로 이들의 매출 또한 대부분 지역 시장에서 이뤄진다. 대기업들이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꼼수까지 동원해가며 진출할만한 시장이 결코 아니다.
혹자는 “대기업이 시장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기업이 싫지 않다", "대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이 더 싸고 좋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기업 그 자체가 아니라, ‘독식’이 너무나도 쉽게 허용된다는 구조 상의 병폐다.
소비자 친화적인 입장에서 계산해보자. 이들 대형마트가 판매하는 식자재는 대체로 시장가격보다 15~20% 가량 저렴하다. 납품단가, 유통비용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진을 포기하고 파는 가격이다.
그렇다면 대형마트는 언제까지 손해 보며 장사를 할 수 있을까? 한 달 벌어 하루 밥벌이하는 개인사업자는 대형마트 같은 경쟁자에게 몇 달 버티기조차 버겁다. 1년도 안돼 지역시장이 고사해 얼마 남지 않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시장 가격이 형성돼 있는 지역시장이 아니라 마트가 소비자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독점체계 구축 이후 가격담합’.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기업 행태가 또 한번 반복되는 것이다.
해당 이슈의 주무기관인 중기청이 하는 일은 뭘까? 일단 보는 눈이 많으니 ‘사업조정제도’를 통해 ‘일시정지’ 권고를 내린다. 마치 중기청이 대형마트 입점을 저지하는 듯 보이지만 이마저도 사실상 눈속임이다.
중기청의 중재하에 협상 테이블에 앉은 대형마트와 지역상인 양측은 주요 판매품목 50여가지에 한해 시장가격을 유지한다는 약속에 합의하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시장 가격 밑으로는 팔지 않겠다”는 대기업 '바지사장'의 약속은 애당초 지킬 생각 없는 립서비스였던 것이다.
중기청은 이에 대한 사후조치를 "법이 개정되야 한다"는 이유에서 포기한다. 사업조정제도 이후 심의위원회를 통해 보다 강력한 규제가 가능한 중기청이 의도적으로 손을 놓고 있으니 상인들 입장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괘씸해지는 건 대기업이 아니라 중기청이다.
유통업종 소상공인들 입장에서 보자면 정치권이나 언론이 입이 마르게 상생, 동반성장을 떠들고 있지만, 아직까지 법제도는 달라진 게 없다. 그토록 기다리고 있는 적합업종 선정도 여전히 기약이 없는 상태다.
소상공인들은 생존권 사수를 위해 시위 등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나마 총선이 끝나면서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조차 없어졌다. 중기청에 대한 기대감은 배신감으로 바뀐지 오래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 이런 저런 이유만 대며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는다면, 중기청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